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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이성 친구. 장 자끄 상뻬 지음, 이세욱 옮김(열린책들 1998)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2. 5. 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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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감상문으로 책 속의 여러 이야기들 중 두 가지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첫째는 한 연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행복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고 그래서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남자는 글로, 여자는 그림으로 행복을 표현했다. 그런데 막상 여자는 남자의 글을, 남자는 여자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아래 그림을 보자. 두 연인이 비슷한 옷을 입은 채 서로 기대고 있다.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지는 알 수 없다. 창문은 활짝 열려있고, 커튼이 휘날릴 정도로 바람이 불고 있다. 얼핏 보면 평온해 보이는 이 그림을 보고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놀랐을 것이다. 창문은 너무 커 공허해 보였고 그 창으로 바람이 거세게 불어 들어와 집기들이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게 우리 행복의 깊이를 표현한 그림이란 말인가? "그 그림은 나를 완전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는 크나큰 의혹을 품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29쪽)

 

 


여기 또 다른 그림이 있다. 남자는 선약도 취소한 채 한 여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남자를 향해 걸어가는 여자는 큰 귀걸이를 했으며 자신의 몸을 과하게 부풀린 옷을 걸치고 있다. 그녀 뒤로는 호텔이나 백화점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 여기서 남자는 "그토록 아름답고 우아한 그녀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39쪽) 감탄한다.

 



시상식에 참여한 여배우가 입을 법한 옷을 입은 채 걸어오는 여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자.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말ㅡ우스갯소리들을 적어놓은 수첩이 있기에 안심이 되고 그렇게 철저히 데이트를 준비한 자신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는 남자의 말은,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했던 그의 단순성을 드러낸다.

이렇듯 난 이 책의 지은이가 현대인들이 지닌 허례허식과 불안을 드러내려 했다는 있다는 점에서 무척 놀랐다. 난 장 자끄 상뻬의 그림에는 따스함이 어려있다는 식의 표현을 자주 보았던 것이다. 특히 이 유명한 <속 깊은 이성 친구>에 대한 세간의 평은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난 이 책에서 사람들의 허황된 꿈과 불안심리, 화려하고 과장된 색을 발견했다. 그의 그림은 내용 자체만 두고 보면 그다지 따뜻해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의 그림은 우리의 약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간 사람들의 평이 완전히 잘못된 것일까. 난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간이 평했던 그 '따스함'은 자기 방어에 바쁘며 행복의 의미를 모른 채 파편화된 일상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가 비난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우리들의 불안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불안함을 감춘 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것뿐이다. 그 관망의 시선이ㅡ놀랍게도ㅡ우리에게 따뜻함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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