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관한 논쟁이라는 것은 시시하기 마련이다. 대개 이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거나 정치적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유라는 개념은 어디에 들어가도 좋을 만큼 포괄적이서 어떤 관계에서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그래서 그런 권위적이고 철학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애인 관계 같은, 일상적이고 평화로우며 당연하게 보이는 관계에서도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 연인 관계에서 자유에 관해 이야기할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당연히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했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이해심도 가지고 있다. 자유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가 이야기될 구석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이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은희경이 쓴 소설 '빈처'에서 결혼한 여자 주인공은 일기를 쓰며 자신의 사라진 자유를 그리워한다. 영화 'The hours'의 버지니아 울프 또한 자신의 사라진 자유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렇다. 사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며 이상할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여성을 이성이 없는 감정의 존재로 묘사한 루소의 예를 시작으로, 안정된, 그러나 일상적인 삶에,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에 의지하며 살다가 죽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그려져왔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 정도는, 아니 일과 회사밖에 모르고 야근과 술에 취해사는 남자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집에서 가정일만 돌보는 여자도 드물다. 여성들도 경제권을 가지고 있고 이제 어느 정도는 주도적인 삶을 산다. 그렇다. 여성들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구닥다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나는 아직도 이것에 대해 논쟁을 하였다. 그런 여성들의 삶에 아직도 구속이 남아있어서? 설마.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황이 뒤바뀌고 역전이 되어 그런 구속을 불필요하게 여기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이제 버지니아 울프 시대의 여성상은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점은 남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라. 여성들이 드디어 자신의 직업을 가졌다. 남성들과도 거의 비등해진 수준까지 왔다. 하지만 그들이,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자아와 행복과 영원한 사랑을 쟁취하였는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가족이, 그들의 연인이 사랑과 결혼 후의 일상적인 삶에 더 이상 함몰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직업을 가짐으로써 얻어낸 것 중 하나는 망각이다. 그들의 외로움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말끔하게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당장 어떤 일에 몰두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잃어버림으로써 잊혀진다. 보다 정확히는 잊어버리고 싶어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경제적 자립과 인권성장과---그로 인해 보다 커진 자유의 맛을 보자마자 그것을 당장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에, 연인이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됨으로서 가져야하는 결속을 구속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그래서 급기야 그것을 거부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성 상위시대에 남성이 누리던 그 자유를, 집안일은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바깥을 떠돌며 즐기던 그 특이한 자유를 이젠 여성 역시 원하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신장이나 직업선택의 자유와 관련 없이, 우리는 여전히 불행이라는 굴레를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예전에는 여자라도 남아 가정을 지켰지만, 이제는 그것을 지킬 사람조차 없어지고 있다. 여전히 그 자유를 버리고 싶지 않아하는 남자들은, 마찬가지로 그 자유를 즐기고 싶어하는 여자들에게 가정을 지키라고 명령할 마땅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남자는 '쿨'한 모습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여자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여자들과 즐기는 동시에 불안한 모습으로, '언젠가는 안주시켜야지'하며 속내를 감춘다. 하지만 여자들을 회식 내내 끌고다니고 싶어하지만 자기 아내나 애인 또는 자식이 술먹고 밤늦게 들어오면 화를 내는 남자들의 이중성은 여전히 스스로를 애매모호한 경계의 세계로 밀어넣고 있다.
이제 여성들이 희생을 하던 시대는 끝이 났다. 남성들도 예전에 자신이 누리던 지위를 벗어던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윽고 그 누구도 희생하려하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자신의 자유를 침해받고 침해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제 그들은 사랑과 결혼에 앞서 자신이 구속될 것을, 자유가 사라질 것을 걱정한다. 남자의 폭력과 무관심을, 가난을, 결혼 후의 일상적인 따분함을, 자식에게 빼앗겨 버릴 자유를, 부도덕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유를 허락한다고.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나를 구속할지를 말해달라. 저 바다로 어떻게 날아갈지가 아니라 그곳에서 어떻게 돌아올지를 말해달라. 나는 그것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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