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의 글은 이상주의라는, 비현실적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그가 권유하는 인간의 가장 최종적인 모습, 즉 어린아이와 같이 사는 것은 그 어린아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선과 악을 떠나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아직 상처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에 발디디며 사는 한 성장하며 필연적으로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결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위버멘시(초인)를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아마 불완전한 우리들 대부분은 위버멘시가 되기보다는 상처, 극복, 재발, 망각을 반복하는 불완전한 형태로 삶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그는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이 되라고 말했지만, 인간의 내부에서 상충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상향의 충돌은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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