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러 과학 교양서를 읽었다. 그 책들은 얼핏 비슷비슷해 보였지만 그 자신만의 특징이 있었다. 칼 세이건의 이 유명한 교양서도 자신만의 색깔이 있었다. 먼저 일반적인 역사, 과학서적과는 달리 사건을 시대순으로 나열하지 않았다. 줄거리가 있는 소설을 이야기하듯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역사 서술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기사본말체를 닮았다. 내용은 고등학교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다. 편안하게, 머리를 쥐어뜯지 않은 채 읽을 수 있었다. 부록을 제외하면 딱딱한 공식, 학술적 내용을 볼 수 없었다. 케플러와 튀코 브라헤의 만남, 케플러의 우울한 말년, 퉁구스카 사건, 핵실험으로 오해받은 소행성의 충돌, 뉴턴의 신비한 몽상, 1910년 핼리 혜성의 등장으로 인한 소동 등 여러 재미 있는 일화들도 소개되어 있었다. 따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인류 지성이 쌓아올린 과학 지식 중 교양에 해당하는 분야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대개 교양 지식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 책은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과학의 목적에 관한 그의 사상 또한 엿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과학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주장조차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칼 세이건의 언명을 들 수 있다.
"어떤 가설이든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그 가설이 지니는 장점을 잘 따져 봐 주어야 한다. (...) 우리는 어느 누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1
화성과 금성의 환경을 지구와 비교하며, 점점 파괴되어가는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퍼시벌 로웰의 화성에 대한 잘못된 공상(화성에 고도의 지적생명체가 만든 수로가 있다는 생각)을 긍정적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은 일반적인 과학서적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이 책이 일관되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인류는 탄생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빚을 지고 있는 코스모스에 감사해야 하며, 코스모스의 유산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우리에게 그런 혜택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또 알게 해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특히 터무니없어 보이는 과학적 시도라 할지라도 그 노력 자체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책의 곳곳에 심어놓고 있다. 그는 단순한 과학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무모해 보이지만 도전할 가치가 있는 그 무언가가 자신의 책을 통해 더욱 열렬히 시도되고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의 업적 중 많은 부분이 오늘날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만든 거인 중 한 명이었음이 분명한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록과,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가 스스로 지은 비문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나는 한갓 인간으로서 하루 살고 곧 죽을 목숨임을 잘 안다. 그러나 빽빽이 들어찬 저 무수한 별들의 둥근 궤도를 즐겁게 따라 가노라면, 어느새 나의 두 발은 땅을 딛지 않게 된다." 2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 재고 있다. 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지만, 육신은 땅에 남는구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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