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단편을 읽는다는 건 조금 특별한 일에 속한다. 단편 장르가 활성화된 우리나라에 비해 외국 작가들은 단편을 잘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난 이 소설이 단편 모음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내 마음에 들 거라는 생각 역시도.
이미 좋은 평을 듣고 있던 소설이었기에 내용이 좋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것은 내 기대이상이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단조롭고, 메마른 것 같은,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말하지 않는 소설. 그건 아마도 나 역시 삶에서 불행을 느끼긴 쉬우나 그 불행을 설명하기도, 그 불행을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심지어 이해받는 것조차도 때로는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특별한 사건이 일어지지 않는 것 같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단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사람들 사이에는 거리가 있고, 이야기는 그 거리에 대해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듯하다. 서로의 인생에 바빠서, 혹은 되돌릴 수 없어서, 이들은 이미 예고되고 어렴풋하게 정해진 삶을 큰 저항없이 걷는다. 그 걸음 사이사이에 거리가 있다. 앞서가고 뒤쳐져 가는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마주보지 않고 건배를 하는 두 사람 사이에 그런 거리가 있다. 흔히 사람들은 마주보지 않고 같은 곳을 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슬플 수 있는 일인지를 이 소설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끝이었다면 이 소설을 몇 번이나 더 들춰보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몇몇 단편의 말미에 이해의 실마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아버지의 편지를 대신 부쳐주는 딸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한 장면에서, 난 이 소설이 특별하게 기억될 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장황하지 않은 감정묘사, 섬세한 장면 설명도 마음에 드는 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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