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소장한 책들을 찍어 올리고 싶은 욕구, 그것은 그 책들을 가지고만 있어도 마치 그 내용 모두를 소유한 듯한 환영에서 비롯된다. 보라, 난 이미 이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있다! 마치 우연히 전설의 보검을 막 손에 넣은 햇병아리 기사처럼, 이제 그 검만 있으면 눈앞의 모든 적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고 사람들은 그 검에 반해 자신도 우러러볼 듯하다. 기사는 자신의 검을 자랑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러나 그 기사가 휘두르는 칼솜씨는 여전하여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길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린다. 이 뻔한 중세 이야기가 현세에 와서 달라진 점은, 예전엔 그토록 얻기 힘들었던 명검을 지금은 누구라도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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