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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의 그림자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6. 30.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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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이제는 아름다운 문장에 천작하는 작가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관련 기사 링크). 미문에 연연하는 현상을 비판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 비판이 문학의 본질은 '사상' 혹은 '시대의 성찰'라는 규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문제다. 이것은 과거 미술계에 불었던 '내용과 형태'에 관한 논란과 비슷하게, 문학이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미묘하게 건드리고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너무 자주 되풀이되는 주제라서 언급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애초에 국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가 비평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깊은 내용, 위대한 사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에야 이런저런 멋진 평들이 곁들여지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문학에 있어서의 '위대함'을 평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미문보단 내용이 중요하고, 그 내용은 시대의 흐름과 사상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니, 이런 토대에서 문학의 감수성이란 그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깊은 철학을 지닌 예술은 좋은 예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깊이 없는 예술을 저급한 예술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예술과 철학 각각은 추구하는 바가 미묘하게, 때론 아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이 철학에 가까운가, 예술에 가까운가 하는 문제는 문학의 본질을 건드리게 된다.

 

문학작품을 해체하여 작품의 사상과 요약된 뜻만 건져내는 일은 문학을 강제 철거하는 행위다. 살점이 드문드문 붙어 있는 문학작품들의 뼈대들을 늘어 놓고는 어떤 게 더 뛰어난 작품인지를 비교하는 행위다. 지금도 이런 식의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고 있다. 아름다운 문장은 문학의 본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학의 본질을 철학이나 사상으로 규정한 채 해체하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은 결국 문학을 현실적으로 쓸모 있어야 하는 어떤 것이자 요약할 수 있는 사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소설은 읽기에 시간이 아깝다'라는 발언을 유명 철학자라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소설은 읽으며 감수성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적 교양을 쌓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문학에서 사상을 최우선시하여 작품 각자의 사상적 깊이를 비교하는 일은, 과거 미술작품을 오로지 해석의 도구로 사용했던 관행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일부러 온갖 상징들을 집어 넣었고, 비평가들은 그걸 해석한 뒤 그 작품이 위대한 뜻을 담았기에 아름다운 작품이라 칭송했다. 더 많은 뜻이 담겨 있을수록 더 훌륭한 그림이었다. 성경의 내용만을 그렸던 종교화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당시 그보다 더 위대한 모사 대상은 존재하지 않았고, 다들 그 그림이 표현하는 성경 속 내용이 무엇인지 해석하기에 바빴다.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채. 난 문학이 예술이 되기를 바란다. 다양성이 유지되어 많은 계층의 독자들이 문학을 좋아하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아직도, 리얼리즘이라는 강력한 사상이 문학에 짙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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