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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발선인장과 게발선인장의 구분, 게발선인장 꽃 피우기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5. 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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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물은 때때로 뛰어난 적응력을 보인다. 우리 집의 게발선인장도 그렇다. 서양에서 흔히 크리스마스선인장이라고 부르는 게발선인장은ㅡ외형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지만ㅡ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선인장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인장은 줄기가 커다랗고 몇 개 되지 않지만, 이 선인장은 잎처럼 보이는 줄기가 마디를 이루며 길게 이어진다.


일반 선인장과 외형만 다른 것은 아니다. 건조한 사막 같은 환경에서 사는 보통 선인장과는 달리 게발선인장이 속한 쉬룸베르게라속의 선인장은 아열대의 습한 지역에서 자란다. 명확히 알 수 없는 어떤 경로ㅡ아마도 조류의 도움으로ㅡ를 통해 브라질 해안의 다소 춥고 습한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 이 선인장은 진화를 거듭하여 춥고 습한 환경에 적응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에 붙어사는 능력까지 얻게 되었다. 나무를 지지대 삼아 커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런 식물을 착생 식물이라고 한다. 


착생 선인장은 줄기 여러 곳에서 뿌리를 내려 나무에 자신의 몸을 고정한다. 그런 용도의 뿌리를 막뿌리라고 하는데 지금도 그런 막뿌리를 쉽게 볼 수 있다. 


게발선인장의 막뿌리. 2020. 4.10.



품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게발선인장은 대체로 가을이나 겨울에 꽃을 피운다. 내가 이 선인장을 키운 지 올해로 9년이 되었는데 매번 11월이나 12월 초순에 꽃을 피웠다. 빠르면 11월 초, 늦어도 11월 말이면 꽃눈이 생겼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는 이상하게도 꽃눈이 생기지 않았다. 12월이 되었는데도 꽃눈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선인장이 여름 내내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걸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이 정남향에 가까워 여름 내내 남쪽 창으로는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빛은 9월에야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난 그 빛을 따라 아침저녁으로 게발선인장의 위치를 옮겨 주곤 했다. 게발선인장이 늦게나마 빛을 받아 꽃 피울 힘을 쌓아가길 바랐다.


흔히 게발선인장은 빛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반양지, 심지어 반음지에서도 잘 살아간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직사광선에 오래 노출하는 것보단 차라리 반음지에서 키우는 것이 낫다. 특히 트룬카타 계열의 게발선인장은 빛에 약해서 오랜 시간 동안 직사광선에 노출하면 안 된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곳에서 키우면 꽃이 피지 않는다. 


처음엔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5월부터 4개월간 빛이 실내로 직접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내는 반사광으로 충만했다. 그런데 12월이 돼도 꽃눈이 생기지 않지 조바심이 났다. 혹시 확장형 거실의 이중창 때문에 빛의 강도가 너무 약해진 건 아닐까? 확장형 거실이라 사실상 빛은 유리창 네 개를 뚫고 들어와야 했는데 유리엔 또 코팅이 되어 있었다. 실내에서 빛을 직접 쏘여준다고 해도 말이 직사광선이지 사실상 직사광선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빛을 따라 선인장을 옮겨 주었다. 매년 꽃을 피우던 선인장이 꽃을 피우지 않는다면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자책감이 들 것 같았다.


다행히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12월 12일, 계속 직사광을 받았던 화분의 반쪽에서 꽃눈이 생겨났다. 직사광을 받지 못한 나머지 반쪽은 소식이 없었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발선인장의 꽃눈. 2019.12.12.



그렇게 화분 반쪽에서 꽃이 피어나자마자, 이번엔 화분을 180도 돌려 그간 직사광을 받지 못한 나머지 쪽이 빛을 받게 해주었다. 그렇게 하자 선인장의 나머지 반쪽에서도 곧 꽃눈이 생겨났다. 올해 1월과 2월의 일이었다. 결국 거의 두 달 내내 꽃이 피어있었던 셈이다. 꽃을 아예 보지 못할까 걱정했었는데 그걸 넘어 두 달이나 꽃을 볼 수 있었으니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이런 결과로 보면 우리집 게발선인장은 겨울의 어둠이 아니라 여름의 빛이 부족하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12월에 이어 1월, 2월에도 꽃을 피운 게발선인장. 2020. 2. 1.



흔히 게발선인장을 두고 직사광선에 오래 노출하면 안 된다고, 또 반양지에서도 충분히 키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상황과 목표에 따라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의 삶과 참으로 닮은 데가 있다.



2.

우리나라에 '가재발선인장'이라는 유통명으로 알려진 선인장이 있다. 쉬룸베르게라속 선인장 중에서 줄기에 뾰족한 돌기가 있는 선인장을 가재발선인장, 줄기가 둥그스름한 선인장을 게발선인장으로 구분하여 부르는 것이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내 선인장도ㅡ줄기에 뾰족한 날이 있으므로, 즉 결각이 있으므로ㅡ게발선인장이 아니라 가재발선인장으로 불러야 한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다. 게의 발이나 가재의 발이나 발 마디의 끝에 뾰족한 돌기가 있는 건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인장의 줄기가 둥근 쪽을 굳이 '게의 발'이라 부르라니 영 이상하다. 줄기 가장자리가 둥근 것과 뾰족한 것으로 선인장을 구분하고자 했다면 게와 가재가 아니라 가재와 새우 정도로 구분해야 하지 않았을까? 줄기 가장자리가 뾰족한 가재발선인장과 줄기 가장자리가 둥근 새우선인장. 하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 때문인지 분류자는 새우가 아니라 가재를 선택했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이 게발선인장과 가재발선인장의 구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와 가재 둘 다 다리의 마디 끝이 뾰족한데, 줄기가 둥근 선인장은 '게발', 뾰족한 선인장은 '가재발'이라 부르라 하니 혼란스러운 것 아닐지. 


외국에선 가재발선인장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 또 게발선인장이라는 이름을 쉬룸베르게라속의 선인장 전체를 가리키는 데  쓰고 있으며 이를 두고 크리스마스선인장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줄기가 뾰족한 선인장이 주류였고, 뾰족한 줄기가 게의 다리를 닮았으며, 꽃은 겨울에 피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 별칭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반면 줄기 끝이 둥근 선인장을 두고 게발선인장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별칭에선 타당한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우리나라도 굳이 가재발과 게발이라는 이름으로 쉬룸베르게라속 선인장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그런 구분은 명확하지도 않고 식물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도 아니니 지양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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