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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날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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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콩나물국밥에 '전주'라는 단어를 붙인 건 내가 전주 태생이기 때문도 아니고 주방장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순전히 계란을 넣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전주에서 이 국밥을 처음 먹었을 때 그릇에 따로 담겨 나온 날계란 한 개 혹은 두 개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적이 있다. 주위에서 먹는 걸 보고 어설프게 따라 했었는데, 덜 익은 노른자가 국물에 섞이며 묘한 맛을 주는 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중에는 국밥을 일부만 떠서 계란이 담겨 있는 그릇에 담아 섞어 먹기도 했고, 계란을 국밥에 부은 뒤 계란이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란만 따로 먹기도 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었는데 노른자를 터트려서 비벼 먹는 것보단 못했다. 난 오랫동안 그 맛을 기억했다. 


난 전주비빔밥보다는 전주콩나물국밥을 훨씬 더 좋아하여 아내와 함께 전주를 처음 방문했을 때도 전주비빔밥 대신 전주콩나물국밥을 소개해 주었다. 아내는 이미 먹어본 적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전통 가게는 아닌 듯했다. 전주콩나물국밥이었는데 계란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제대로 된 집을 소개해 주겠다며 전주의 한 골목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하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자주 찾던 그 전주콩나물국밥집에 가보려 했는데 기억은 드문드문했다. 인근에 가면 얼핏 그 집이 떠오를까 했지만 수십 년 세월에 바뀐 게 적지 않은 듯했다. 하릴없이 어느 콩나물국밥집에 차를 세웠다. 그 집도 여느 전주콩나물국밥집처럼 계란이 따로 나왔다. 난 이런 것은 처음 보지 않느냐는 듯 괜스레 야단을 떨며 이걸 국밥 안에 넣어서 먹으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난 노른자를 터트려 국밥에 비볐다. 아내는 내가 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난 날계란 싫어하는데."


난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라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럼 계란을 넣지 말고 국밥만 먹으라고 권유했다. 아내의 계란은 내 차지가 되었다. 아내는 계란이 없는 국밥을 덤덤히 맛보았고 난 속으로 아, 저러면 전주콩나물국밥이 아닌데, 하고 되뇌었다.


지금도 아내는 날계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란을 일찍 풀은 뒤 뚝배기 뚜껑을 닫아 놓았다. 아내가 뚜껑을 열 때쯤이면 계란이 어느 정도 익어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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