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상섭 번역 <햄릿>에 해설을 달다, 비극적인 삶의 조건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9. 12. 18. 12:08

본문

1. 

"방금 열두 시 쳤어."


ㅡ 경비를 서고 있던 인물이 교대를 하면서 (밤) '열두 시 쳤다'며 시간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나온다. 또 후에 "종이 한 시를 쳤다" 하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시대에 매 시간마다 종을 쳐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한 것 같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시대를 혼동한 표현이 종종 등장하므로 열두 시와 한 시에 종이 울렸다는 것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햄릿>의 배경은 12세기 덴마크 왕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12세기의 유럽에는 밤 열두 시를 알릴 수 있는 기계식 시계가 없었다. 13세기의 유럽은 여전히 물시계를 선호했다. 1250년에 파리 궁정엔 거대한 물시계가 건설되었고 카스티야 왕 알폰소 10세의 궁정에도 비슷한 물시계ㅡ정확하게는 물이 아니라 수은ㅡ가 설치되었다. 


이렇게 기계식 시계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사람이 직접 줄을 잡아당겨 종을 울려야 했다. 이 종탑 관리인의 업무는 밤에도 이어졌고 그래서 새벽일지라도 필요한 때라면 종을 울렸다.


중세 서유럽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가 괘종시계다. 이런 기계 시계가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건 14세기 경으로, 1309년의 밀라노를 시작으로 제노바, 피렌체, 스트라스부르 등에 있는 성당의 탑에 기계 시계가 설치되었다. 스트라스부르 성당에는 1350년에 제작된 대형 시계가 있는데, 이 시계는 아스트롤라베로 천구의 위치를 알려주고 매 정오마다 성모 마리아와 동방박사가 등장하며 음악을 연주하는 등 놀라운 기술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기계 시계들도 정확도엔 문제가 있어서 시계 관리인이 매일 정오에 태양 위치를 보며 시간을 수정해야 했다. 




2. 

"햄릿을 잉글랜드로 급히 보내서 늦어진 조공을 요청시킨다."


ㅡ 시대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당시 덴마크 왕이 잉글랜드 왕에게서 조공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늦어진'이란 수사를 붙였다. 잉글랜드의 힘이 강력해지면서 바이킹 왕국에게 바치던 조공을 내지 않기 시작한 것으로 희곡 배경을 정한 것 같다.


실제로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는 1130년까지 매해 바이킹 왕국에 일종의 세금인 데인겔트를 냈다. 이후 데인겔트는 기록에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다가 헨리 2세가 통치하던 1162년 이후 세금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클로디어스가 잉글랜드의 조공이 늦어진다고 표현한 이유에는 이런 배경이 있을 것이다.




3. 

"새벽을 부르는 나팔 격인 수탉이 높고 날카로운 목청을 가지고 낮의 신을 깨우면, 그의 경고를 듣고 바다나 불이나 땅이나 공중에 있던 함부로 쏘다니던 영혼들이 자기들의 지역으로 달려간다고 하데."


ㅡ 수탉은 예나 지금이나 지역을 가리지 않고 새벽을 알리는 동물이었다. <햄릿>의 수탉은 높고 날카로운 목청으로 낮의 신을 깨워 유령을 쫓아냈지만, 오늘날의 수탉은 며칠 전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온 앞집의 초보 귀촌인에게 농촌 생활의 소음이 개 짖는 소리 정도일 거라는 생각이 순진한 착각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며 그를 새벽형 인간으로 바꿔 놓는다.


닭이 우는 것과 연관된 가장 유명한 고사는 예수께서 베드로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한 말일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태오 26:34) 당시 닭이 우는 것은 시간과 연관이 있었는데, 로마인들은 새벽 3시경을 ‘닭이 울 때’(Gallicinium, 갈리키니움)라 부르며 밤의 시간을 구분하는 말로 썼다. 다시 말해 '저녁, 한밤중, 닭이 울 때, 이른 아침'이다. 닭은 동서양을 관통하는 시간의 전령이다.




4. 

"약한 자여, 네 이름은 여자다."


ㅡ 때로 소설의 '나'를 실제의 '나'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을 본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어떤 소설가가 '나'를 화자로 등장시켜 자본 사회를 비판하면 그 소설가를 사회주의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그들은 어떤 소설가가 '그'를 화자로 등장시켜 자본 사회를 비판해도 그 소설가를 사회주의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무언가의 문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전후의 맥락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의 극 중 대사, "약한 자여, 네 이름은 여자다"라는 말을 듣고는 셰익스피어를 남성우월주의자라고 비난하고, <한여름 밤의 꿈>의 극 중 대사, "양파나 마늘은 먹지 마, 숨이 달콤해야 되니까"라는 말을 듣고 셰익스피어가 양파와 마늘을 싫어했다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동양인을 증오했다ㅡ동양인은 대체적으로 양파와 마늘을 많이 섭취하므로ㅡ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중 하나는 이런 관점을 지닌 이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잘 살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과 연관되어 있다.




5. 

"확실히 간덩이가 비둘기라 쓸개가 없어 폭력을 당해도 안 쓰구나."


ㅡ 이 문구에서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게 적어도 셰익스피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비둘기는 몸에 분노를 일으키는 쓸개가 없어 마음이 평화롭다고 믿었다. 실제로 비둘기의 간에는 쓸개가 없다. 


햄릿이 비둘기에겐 쓸개가 없다며 중얼거리던 것이 꼭 그 시대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기원이 신약 시대에까지 올라간다. 마태오의 복음서에는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문구가 있다(마태오 10:16). 또한 마르코의 복음서에는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다고 묘사되어 있다(마르코 1:10). 성령이 묘사된 성화에 천사 주변으로 비둘기가 그려져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쓸개 하니 문득 몇 달 전 심하게 구토를 했던 게 생각난다. 우리가 구토를 계속하다 보면 마지막 즈음에 노란색의 액체를 토해내게 되는데, 이를 흔히 위액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쓸개즙이다. 그때 나도 내 노란 쓸개즙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6. 

"피로스의 피 묻은 칼이 왕의 머리에 떨어지니, 군신의 영구한 갑옷을 만들기 위해 키클롭스가 두드리는 쇠망치보다도 사정없는 것이었다."


ㅡ 키클롭스는 단순한 외눈박이 괴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오디세이아>의 영향일 것이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 일행은 키클롭스에게 사로잡히는데 오디세우스가 그의 하나뿐인 눈을 찔러 맹인으로 만들고 탈출한다. <오디세이아>에서 키클롭스의 역할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키클롭스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어떤 키클롭스는 뛰어난 대장장이로 활약했다. 위 대사는 한 연극 배우가 햄릿의 명으로 트로이 전쟁이 끝나갈 무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인데, 이때 키클롭스가 쇠망치를 두드린다고 표현했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가 번개를 내려칠 때 쓰는 무기인 '아스트라페', 포세이돈의 삼지창으로 잘 알려져 있는 '트라이던트' 모두 키클롭스가 만든 것이다. 이처럼 키클롭스는 훌륭한 대장장이였고 그래서 '키클롭스가 두드리는 쇠망치'라는 클리셰가 탄생했다.




7. 

"나를 믿지 말았어야지. 고매한 덕도 해묵은 남자 뿌리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반드시 그 맛을 좋아하게 되거든.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ㅡ 우리는 젊은 시절 순수를 사랑하지만 결국 이 세상에 순수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햄릿은 그 사실에 뒤늦게 괴로워하고 있다. 그가 괴로운 이유는 인간이 순수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수용하는 대신 인간의 타락과 체념에 얽매여 마음을 복수심으로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순수히 '사랑' 하나의 감정으로 자신과 결혼해 주기를 바란다. 남녀 모두 어릴 때는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나 가족구성원이 늘어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하면서 그 순수한 감정만으로는 온전히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여성들의 관념이 그렇게 변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자는 이를 여자의 변심으로 간주하는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에도 변심이 드러난다. 우리는 이것을 순수의 타락이나 실종으로 볼 때가 있고, 그래서 이에 괴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본디 인간이란 순수 그 자체의 감정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끔 운명지어진 존재다.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부터 그러하다. 우리는 식물과 다르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순수를 추구하되 타인의 이기주의ㅡ내 관점에서의 이기주의ㅡ를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하는 것에 있다. 햄릿은 순수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서둘러 재혼을 한 어머니의 마음을 오로지 욕정으로 이해하여 스스로를 깊은 우울과 병에 빠트리고 말았다. 그가 그런 마음의 병에 시들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독살 사건을 보다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넓은 시야를 회복하지 못했다. 우리는 대개 햄릿과 다르지 않으며, 그래서 삶의 비극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