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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것은 없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시

by solutus 2019. 7. 3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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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는 않았다. 넌 밤낮없이 울기도 했고 길바닥에 눕기도 했다. 걷기 싫다며 몇 시간을 매달려 있기도 했고 잠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제 엄마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고 혼자서 옷을 입기도 하고 가끔씩 대소변을 가리기도 한다. 버스를 가리키며 노란 차라 외치기도 하고 동요를 어설프게 따라 부르기도 하며 팔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한다. 아직 문자를 읽지 못하지만 언젠가 글자판을 가리키며 그대로 따라 읽으리라. 때로 그런 네 모습이 신비하게 느껴지곤 한다. 올망졸망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옷에 팔을 집어넣는 모습이,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

 

당신은 두 아이와 함께 식사를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다른 인생을 살아왔던 두 남녀가 이해타산이 얽힌 고된 세계에서 모든 것이 새롭고 아득하고 두렵기만 한 두 아이와 함께하기까지,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난 알은체했다. 결혼과 육아는 전쟁이란 말이지.

 

그러나 돌이켜 보면 전쟁 같은 것은 없었다. 그건 단지 당신의 일부를 상상하던 나의 방식. 

 

쉽지는 않았다. 난 가끔씩 잠을 거부했고 대소변을 가리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도 넌 너무나도 평범한 펜네 하나를 가리키며, 스스로 조금씩 바뀌며 외쳤다. 배시시 웃으며, 어깨에 메고 있던 조그만 수박 모양의 바구니에서 펜네 하나를 꺼내며. 이것 봐, 이거! 이 세상에 펜네보다 멋진 방정식은 없어! 때로 이런 내 모습이 신비하게 느껴지곤 한다. 우물우물 꾸역대는 모습이, 바지에 뱃살을 욱여넣는 모습이, 아무도 없는 곳에 틀어박힌 모습이. 언제 이렇게 작아져버린 걸까?

 

그건 단지 당신이라는 소국에 군림하던 나의 방식. 그러니 돌이켜 보면 전쟁 같은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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