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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대로 살며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9. 7. 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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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언론에서 "일을 느리게 해서 다 불편하잖아"[각주:1]란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해당 기사의 글쓴이가 환경미화원으로 취직을 했는데 자신이 일을 느리게 하자 선배 환경미화원들이 불편해했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 자신은 굼뜨기 때문이 아니라 꼼꼼하기 때문에 일을 오래 하는 것이며 정해진 근로시간을 어긴 적도 없다는 항변을 하고 있었다. 그럼 선배 미화원들은 왜 글쓴이를 불편해했을까? 글쓴이가 볼 땐 자신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선배들이ㅡ정규 근로시간과 상관없이ㅡ임의로 정해놓은 일과시간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선배들은 오전 10시까지 일을 끝마친 뒤 30분 동안 다 같이 TV를 보며 쉬는 걸 규칙으로 삼고 있었는데 자신은 일을 오래 해서 그 시간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선배 미화원들이 '오전 10시까지 일, 그 뒤 30분 동안 TV 시청'이라는 규칙을 고수하는 이유를 '순종'에서 찾았다. 누가 세운지도 알 수 없는 규칙인데 오래도록 세상에 순종하며 살다 보니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임의적 규칙에 순종하지 말고 "난 천천히 일할 권리가 있어!"라고 선배들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글쓴이는 주장했다. 

 

 

2.

글쓴이가 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선배 미화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선배 미화원들은 훌륭한 성품과 투철한 직업의식의 소유자들인 데도 세상의 '빨리빨리'라는 외침에 순종하다 보니 저리 되고 말았다고. 하지만 그런 순수한 배려심은 인간 본성을 외면하는 데가 있다. 또한 글쓴이가 선배들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끔 오해를 일으킨다.

 

선배 미화원들이 일을 빨리 끝내고 쉬기를 원하는 까닭은 그게 몸과 마음에 편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기 집을 청소하는 것도 아니며 얼마나 청소가 잘 되어 있는지로 월급이 결정되지도 않는다. 꼼꼼히 잘 닦는다고 해서 칭찬하는 사람도 없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길도 그다지 곱지 않다...... 그래서ㅡ비록 직업의식에 걸리더라도ㅡ얼른 끝내고 빨리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선배 미화원들에게 '천천히 일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선배 미화원들이 더 중시하는 권리를 외면하는 말이다. 선배 미화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권리는 빨리 일을 끝내고 '쉴 수 있는 권리'다. 글쓴이의 생각이나 바람과는 달리, 세상을 의무나 충실, 소명 등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선배 미화원들이 글쓴이를 불편해하는 이유는 글쓴이가 '단순히' 공동체의 규칙을 따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글쓴이가 자신들의 '쉴 권리'를 침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의 규칙은 문서화된 규정과 관리자의 지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임의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TV를 보며 쉴 때 다른 누군가가 일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TV를 보고 있는 지금 이 시간도 실은 근로시간인데 그럼 저 신입처럼 우리도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일을 너무 대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쟤는 저렇게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TV 보고 있는 우리를 누가 보게 되면 어쩌지. 우리는 할 일이 없거나 대충 일하며 논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글쓴이의 행동은 선배들이 잊고 싶었던 걱정과 우려를 자꾸 떠오르게 한다. 만일 누군가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있는 글쓴이를 칭찬하게 된다면, 그 칭찬이 관리자의 귀에 들어가 결국 다른 미화원의 질책으로 이어진다면, 그럼 이제 미화원들은 편히 TV를 보거나 낮잠을 잘 수 없게 된다. 만일 그런 이유로 쉬는 시간이 사라지게 된다면 이전의 '불편함'과는 차원이 다른 원망이 글쓴이를 향하게 될 것이다.

 

 

3.

가끔씩 이런 푸념을 듣는다. 내 할 일, 내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지 왜 주변 눈치를 보아야 하느냐고. 한쪽에서 보면 옳은 말이다. 하지만ㅡ안타깝게도ㅡ사람의 행동은 언제나 상대성의 제약을 받는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공동체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자기 집에서는 식사 후 매번 설거지를 바로 해놓는 깔끔한 사람이더라도 여러 식구가 모인 명절 가족 모임에선 식사를 끝내자마자 바로 설거지를 하러 가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 자기 딴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직접 설거지를 바로 하면 다른 사람들이 쉴 수 있고 집도 깨끗하고 좋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지위의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쟤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니 나도 뭔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사람도 일을 하고 싶은 상태였으면 괜찮지만 '아까 음식도 만들고 했으니 이제 좀 쉬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설거지를 하러 간 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가능성이 높다. '재 때문에 눈치 보여서 쉬지도 못하겠네.' 슬몃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만일 책임감이 강한 둘째 며느리가 그런 식으로 설거지에 나섰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그런 둘째 며느리를 칭찬한다면 첫째 며느리와 셋째 며느리는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게 된다. 둘째 며느리는 자기 딴에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튀어 보이려 한다'는 첫째와 셋째 며느리의 흉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서의 눈치와 질시도 이와 다르지 않고, 어느 공동체 사회에서의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의 온갖 암묵적인 룰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세뱃돈과 축하금의 액수부터 신입사원의 차림새와 차량의 종류 이르기까지 상당수가 주변의 영향을 고려하여 정해져 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아무렴 어떠느냐 하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세상의 눈치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 심지어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산다, 그러니 남들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마저 막상 다른 사람의 그런 행동은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독불장군은 다른 독불장군을 용인하지 못하는 법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공동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이유는 이러한 암묵적 룰과 눈치,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불편함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런 이유로 공동체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 또한 한 사람의 '규칙 강요자'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몰이해는 독선을 낳기 쉽고 이해는 관용을 부른다. 

 

 

4.

다른 사람에게 타박받지 않으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숨어 살지 않는 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기부금을 내는 것도 홍보처럼 여겨지면 흉이 되는 세상이다. 둘째 며느리의 솔선수범이 첫째와 셋째 며느리에게 흉이 되는 것은 그 행동이 명절에 모인 가족들에게 자신의 선행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 사위의 많은 세뱃돈이 흉이 되는 것은 자신의 부를 외부에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은 순수한 뜻에서 한 행동이라 하겠지만 세상은 그를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제삼자는 그들의 행동을 순수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제삼자도 막상 주변 인물들의 행위로 인해 자신이 쉴 수 없게 되거나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면 분을 참지 못하고 만다.

 

방법이 없을까? 가장 쉽고 평이한 방법은ㅡ숨어 살 수 없다면ㅡ그들이 하는 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며 사는 것이다. 이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가 타인과 다르게 행동하니 타인이 나를 흉보고 질시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자신이 바라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이 모두를 수용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이것이 평범한 선에서, 개인적인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다음과 같은 불만이 들 수도 있다. "아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나쁜 일도 아닌데 왜 내가 숨어가면서 해야 돼?" 당연히 상책은 성과는 성과대로 내고 공동체 내에서 존경받으며 구성원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가령 회사에 남들보다 일찍 출근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과 수다도 떨지 않으며 일에만 매진하던 김 사원이 어느 날 김 이사의 눈에 들어 애사심이 깊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받았고 그 일로 높은 고과를 받게 되었다고 치자. 김 사원은 자신의 노력이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했고 몇몇 동료들은 축하도 해주었다. 그런데 일부 선배들이 나타나 왜 상사에게 아첨을 떨어 사무실 분위기를 흐리냐며 타박을 준다.

 

"너 축하해 주었던 걔도 실은 너 너무 나댄다고 얘기했어. 너 때문에 A 선배까지 이번 승진에서 물먹은 거 알지? 너만 잘난 줄 알아?"

 

이런 일이 없길 바라겠지만 적지 않은 직장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 뒤에서, 그들만의 SNS에서 은밀하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러니 자신의 노력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다면, 노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면, 그럼에도 그 공동체에서 잘 어우러져 살고 싶다면 우선 첫 번째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그 첫 번째 단추는 이렇듯 자신만만한 우리도 마음 불편한 그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해답 또한 수월하게 찾을 것이다.

 

그런데ㅡ말은 좋지만ㅡ그런 수준 높은 이해를 자신에게, 심지어 타인에게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타인은 결코 내 뜻대로 움직이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노력 와중에 스스로 독선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훌륭한 인격을 그나마 수월하게 성취하는 방법은 어린 시절의 교육 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시기를 놓쳤다면, 성인이 되었음에도 끊임없이 토론하며 노력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런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공동체가 아니라면, 무엇보다도 '나는 옳다'는 독선의 위험을 피하고 싶다면, 아쉽게나마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심신의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1. 최명숙, 「"일을 느리게 해서 다 불편하잖아" 이 말이 가져온 후폭풍」 (오마이뉴스, 2019. 7. 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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