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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프 부르기뇽 만들기, 신혼기의 음식생활사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6. 1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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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뵈프 부르기뇽은 레드 와인에 소고기를 푹 삶은 요리다. 스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부르기뇽'은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부르고뉴 지역과 연관된 말로, 뵈프 부르기뇽은 '부르고뉴식 소고기 요리'라 해석할 수 있다.

 

부르고뉴는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명성만으로는 보르도산 와인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포도주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보니 부르고뉴에선 음식을 만들 때 재료에 레드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섞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와인을 넣어 조리하는 음식을 '부르고뉴식' 조리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부르기뇽', 즉 부르고뉴식 요리이므로 피노누아 품종의 부르고뉴산 레드 와인을 넣어 만들면 그 이름에 어울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르고뉴의 또 다른 요리인 코코뱅과 유사한 면이 있다.

 

피노누아(Pinot Noir) 품종의 부르고뉴산 레드 와인. 2019. 6. 11.

 

뵈프 부르기뇽은 건식열과 습식열을 모두 이용하는 전형적인 브레이즈 기법으로 만든다. 즉 고기를 달군 팬에 익힌 뒤 주재료로 반쯤 잠길 정도로 요리액을 넣고 뚜껑을 닫은 후 120~160도 오븐에서 천천히 익힌다.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조리기법이다. 

 

브레이즈 기법으로 조리할 땐 요리액에 루(roux)나 밀가루를 섞어주는 경우가 많다. 소스의 점도를 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소스의 점성이 커지면 소스가 입 안에 오래 머물어 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또 더 부드럽게 느껴져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2.

문화적으로 중요한 사항은 프랑스인들이 국물 요리를 저급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이 가득 담긴 냄비에 재료를 넣어 끓이는 방식을 '영국식'이라 부르곤 한다. 이런 조리법을 두고 프랑스의 과학자 에르베 티스는 '지적 빈곤'이라고 비난했다. 뵈프 부르기뇽은 다량의 와인에 소고기를 삶아 내는 요리인데 만일 소스의 농도가 물처럼 묽다면 프랑스인이 생각하는 고급 조리법에서 꽤나 멀게 느껴질 것이다. 뵈프 부르기뇽이 고급 정찬이라기보다는 가정식 취급을 받는 이유를 이와 연관 지어볼 수 있다. 사용하는 식재료와 향신료 또한ㅡ프랑스 절대 왕정 시기의 관점에서 보면ㅡ'귀족적'이라 부르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비록 뵈프 부르기뇽이 가정식이긴 했지만 그들 스스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빈민들이나 먹을 법한 묽은 국물을 굳이 많이 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뵈프 부르기뇽은 소고기가 들어가는, 부르주아 정도는 되야 먹을 수 있는 가정식이었다. 따라서 스튜팬에 와인 소스가 가득하다 하더라도 요리를 접시에 낼 때는 소스를 조금만 뿌렸다. 소스를 졸이거나 소스에 루 같은 농후제를 넣어 걸쭉하게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소스는 거의 뿌리지 않고 고기와 야채만 건져내어 플레이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뵈프 부르기뇽에 루나 밀가루를 첨가하는 이유를 문화적 관점에선 그렇게 해석해 볼 수 있다.

 

따라서ㅡ굳이 끈끈한 소스를 원하지 않는다면ㅡ루나 밀가루를 넣는 대신 소스를 조금만 뿌려도 나쁘지 않다. 이미 프랑스에선 밀가루나 루를 첨가하는 방식의 무거운 소스를 배제하자는 '누벨 퀴진'이 나타난지 오래다. 난 프랑스인이 아닌 데다가 국물 요리가 하나쯤 식탁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래서 소스를 걸쭉하게 하는 대신 소스를 조금 뿌리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항상 이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3.

격식을 차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편하지 않으면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따라서 뵈프 부르기뇽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와도 '스타일'은 뒷전이 되기 쉽다. 하지만 가정에서도 스타일이 유지되는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식생활에 대한 스타일이 유지되는 시기, 그 시기를 나는 '음식생활사의 신혼기'라 부른다.

 

우리는 처음에 이 요리를 접시에 낸 뒤 포크로 찍어 나이프로 썰어 먹었다.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신혼기를 존중하고자 했다. 하지만 다음 날엔 식탁에 냄비째 올려 젓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아내는 뵈프 부르기뇽을 갈비찜이나 짜장쯤으로 오해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래도 과도기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아래 영상은 뵈프 부르기뇽을 만들며 촬영한 것이다.

 

 

다음 영상은 접시에 플레이팅하는 장면까지 넣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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