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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해변의 지질 관찰, 그곳의 어린 아이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6. 1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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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는 강동해변의 자갈을 보며 "몽돌이라 부르기엔 자갈이 너무 작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강동해변에 '강동몽돌해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에 한 말이었다. 몽돌의 사전적 의미는 '둥근 돌'이고, 강동해변의 자갈은 모두 둥글기 때문에 강동의 해변을 몽돌해변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몽돌이라 부르려면 모서리가 둥글 뿐 아니라 크기도 주먹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살펴 보니 경상도 지역엔 '뭉돌'이라는 방언이 있었다. 어쩌면 그 영향일까? 그 방언은 바닷가에 있는 주먹만한 크기의 커다란 검은 돌을 가리켰다. 바닷가에 있는 검은 돌, 바로 이곳의 돌들 아닌가. 하지만 주먹만한 크기는 아니었으니 방언이 뜻하는 '그' 뭉돌은 아닌 셈이었다.

 

확실히 사람은 자기가 나고 자란 곳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어린 시절에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2.

그날 장인어른은 낚시를 하고자 강동해변을 찾으셨다. 하지만 강동해변의 파도가 강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목적지는 주전해변이었다. 우리는 해변 앞 로스터리 카페인 아라커피에 들른 뒤 주전해변을 걸었다. 강동해변에서 남쪽으로 7km 정도 떨어져 있는 주전해변은 강동해변처럼 자갈로 된 해빈이었다. 모든 자갈이 둥글둥글하기에 '주전몽돌해변'이라고도 했다. 이곳의 자갈은 강동해변에 비하면 꽤 큰 편이었다. 주먹 크기의 '뭉돌'에 어울리는 해변이었다. 과연 아내는 자갈의 크기가 크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전해변은 평소 낚시꾼들로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그날은 파랑이 심하여 해변쪽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장인어른은 굴하지 않고 낚시포인트를 찾아내셨다. 금천이라 이름 붙은 작은 강줄기가 동해로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그곳은 다른 해변에 비해 파도가 심하지 않아 낚시꾼들이 몰려 있었다. 장인어른은 간이의자와 낚시대를 펼칠 준비를 하셨다. 그 사이, 난 주변을 둘러보다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던 한 암석지형으로 다가갔다.

 

 

3.

경남 지역의 동해안엔 용암으로 이루어진 대지가 많아 다량의 화산암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곳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간 특이한 형태의 지형은 해안절벽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다로 낙하하고 있는 해식애였다. 난 가까이에 있던 바위를 타고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일부 암석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그 형상 역시 차별침식이 원인일 것이다. 자세히 살펴 보자 다량의 크고 작은 구멍들이 보였다. 어떤 것은 현무암이 생성될 당시에 만들어진 기공일 것이고 어떤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만들어진 풍화의 흔적, 풍화혈일 가능성이 높았다.

 

크고 작은 화산쇄설물들의 파편도 상당수 보였다. 응회암, 어쩌면 포획암일지도 모른다. 동해안에서 이런 것을, 그것도 이처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다른 성질의 파편들이 풍화와 침식으로 떨어져 나가면 암석 표면에 구멍을 남기게 된다. 이른바 풍화혈이다. 그중에서도 타포니(tafoni)와 나마(gnamma)가 대다수였다. 타포니와 나마는 크기가 다양했다. 내 손바닥 크기의 타포니도 있었다.

 

타포니라 하면 낯설 테지만 보통 한두번쯤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인 경주 골굴사는 타포니에 세워진 사원이다. 서울의 인왕산도 타포니로 유명하다. 인왕산의 선바위는 침식과 풍화로 화강암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듯한 구조를 갖게 되었는데, 바로 그 서 있는 모습 때문에 선바위라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서 있는 듯한 형상의 지형을 지질학 용어로 토르(tor)라 부른다. 설악산의 울산바위도 전형적인 형태의 토르라 할 수 있다. 인왕산의 선바위는 커다란 타포니까지 가지고 있어 그 모습이 범상치 않다. 그에 비하면 이곳의 지형은 규모가 작다. 그렇다 해도 다양한 형태의 화산암과 풍화/침식 지형이 모여 있는 이곳에 지질에 관한 작은 안내판 하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4.

난 낚시 포인트로 돌아와 장인어른의 옆을 지켰다. 때때로 아이도 그 근처를 서성였다. 특별한 기억은 주전해변을 걷던 아이가 자기의 주먹보다도 작은 돌들을 집어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으며 기뻐하던 모습이었다. 한번은 자기 얼굴보다도 큰 돌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 돌은 주머니에 넣을 수 없었다. 해변에 수없이 널려 있는 평범한 작은 돌이 주었을 작은 기쁨. 한 웅큼의 모래에서 발견했던 커다란 행복. 이 조그만 아이도 작은 것에서 얻는 충만함을 잊을 때가 오고야 말까. 이제 만 두 살인 아이가 작은 조약돌을 수집하며 즐거워했을 때, 그리고 어른들의 권유에 따라 그 돌들을 원래 자리에 두고 떠나야 했을 때, 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주전해변의 연회색 몽돌. 입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면암으로 보인다. 2019. 6. 9 촬영.

 

주전해변의 몽돌. 백색 반정의 모습이 확연하다. 안산암으로 보인다. 2019. 6. 9 촬영.

 

낚시터를 고르다 내 눈에 띈 특이한 형태의 검은 암반. 오른쪽 끝으로 해식애가 보인다. 2019. 6. 9 촬영.

 

가까이 가서 보니 회백색의 표면에 다량의 구멍이 나 있는 바위가 있었다. 조면암질 현무암으로 보인다. 2019. 6. 9 촬영.

 

다양한 크기의 암석이 회백색 바위에 포획되어 있었다. 화산력 응회암일까? 포획암일까? 2019. 6. 9 촬영. 

 

기반암 위에 생성되어 있는 타원형의 패인 자국들. 나마(gnamma)라 부른다. 2019. 6. 9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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