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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모디아노 <신혼여행>,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22. 5. 3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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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와 함께 서울 용산역으로 기차를 타러 가는 날이었다. 아내는 둘째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첫째 아이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다. 우리는 대구에 계신 할머니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이를 지방으로 데려가는 일은 내 담당이었다. 기차를 탈 때마다 으레 그랬듯이 이번에도 기차에서 읽을 책을 고르고자 책장을 훑어보았다. 짐이 많으면 불편하기에 얇은 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얇으면서도 내용이 어렵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책. 한쪽에 쌓여 있는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소설집에 눈길이 갔다. 그의 책은 대체로 얇아서 내 요구조건에 맞았다. 여러 책 중 특히 <신혼여행>이 눈길을 끌었다. 문득 이언 매큐언의 <체실비치에서>가 떠올랐다. 제목처럼 신혼부부에 관한 내용일까? 어쩌면 우리 같은 신혼부부.

 

난 이 책을 전주로 가는 기차에서, 대구의 집에서, 또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읽었다. 그리고 그때마다ㅡ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법칙을 따라ㅡ전에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어내야만 했다. 그는 이야기를 느릿하게 전개했고 풍경을 비슷하게 연결했으며 과거와 현재를 모호하게 오갔다. 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주인공이 현재에 있는지 과거에 있는지, 과거라면 얼마나 오래전의 일인지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만 했다.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이야기는 안개처럼 느껴진다. 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아니라 내 몸을 감싸며 시선을 가리는 안개.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을 현실적으로 체감한다. 모두의 삶이 불확실한 경계의 운명으로 묘사되는 인물들을 체험한다. 그곳엔 명확한 잘못도, 분명한 사과도, 확실한 시인도 없다. 폭력이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보상을 바라는 사람도 없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는 폭력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무감각해져서 그것이 대항해야 할 대상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절망이나 포기를 묘사하지도 않는다. 마치 저건 내 것이 아니라는 듯, 나와는 무관하다는 듯 지켜볼 뿐이다. 각자의 아내와 남편을 대하는 태도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관심을 주지 말라고 가르쳤고, 키케로는 최선을 다해 활시위를 당기되 시위를 놓고 난 뒤엔 화살을 그저 지켜보라고 가르쳤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의 남자는 꼭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처럼 보였다. 그는 아내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때론, 그 스스로 묘사했듯이, 아내에게서 도망쳤다. 내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었던 그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알고 보니 그는 나와 무관했던 것이다. 철학은 나와 무관한 것에 나의 행복을 맡기지 말라고 주문한다. 나의 행복이 아내나 남편과 무관하다는 주문. 하지만 그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고, 바로 그 지점에 우리가 고통에 이끌리는 운명이 놓여 있다. 니체라면 그 고통스러운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할 것이다. 고통스러운 운명을 다른 가치로 평가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벽 4시를 넘기고 나서야 책을 덮었다. 졸려서가 아니었다. 그날 아침에 있을 일과를 마치고 서울로 떠나려면 잠을 자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일을 마치고 아이와 헤어질 때, 난 아이를 앞에 두고 무릎을 꿇어 시선을 맞추었다. 그때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말하고 싶었다. 넌 아빠한테 버림받은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난 아이를 부둥켜안지도,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내가 아니라 내 뒤의 어떤 곳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말을 중얼거리며. 아이는 내게 큰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적어도 그 순간, 아이는 자기 행복을 내게 맡기고 있지 않았다.

 

난 아이를 안으려다 말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작별 인사로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답례로 배꼽 인사를 했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인사였다. 난 그길로 일어나 곧장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아이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때 뒤를 돌아 아이를 지켜보아야 했다. 내 기대 그리고 아이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할머니의 손을 잡은 아이가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모습을 내 눈에, 내 기억에 담아 두어야 했다.

 

<신혼여행>의 한 문구. "그 시절,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행복했다고 추억하게 될 그날의 시기가 거기 있었다. 언제나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놓여 있는 행복. 행복은 과거에 묶여 있다. 난 회상할 행복이 있는 것만으로도 일단 행복한 것이라고 나 자신을 달랬다.

 

생경한 만남의 불확실한 혼란스러움. 나와 무관한 무엇들. 나는 여전히 신혼여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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