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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바이블, 블랙 유머는 필요하다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9. 2. 22.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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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인생의 바이블 같은 책을 하나 꼽으라면 무얼 골라야 할까? 독실한 종교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하나를 고를 테지만, 세례는 받았으나 종교인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굳이 하나를 뽑자면 움베르토 에코의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을 고르고 싶다. 청년 시절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들도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지만 젊은 시절의 영향력은 움베르토 에코쪽이 더 컸다. 


난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을 책이 아니라 인터넷의 텍스트로 처음 접했다. 움베르토 에코가 누군지 잘 몰랐던 시절, 그저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인물 정도로만 그를 알고 있던 시절에 인터넷에서 그의 글을 처음 접했다. 당시의 인터넷 세계는 오프라인의 실세계를 온라인의 가상세계로 복제하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리하여 '게시판'이 주도했던 그 공간들은 온갖 작가들의 저작들로 곤죽이 되어 있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시인이었다. 그 짧은 문장을 인터넷에 옮겨 적는 데도 실수가 많아서, 온라인으로 잘못 옮겨진 글들이 실세계로 다시 옮겨지는 통에 잘못된 시가 진짜처럼 퍼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나도 그런 식으로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을 처음 접했다. 누군가가 게시판에 올려둔 그의 글을 읽고 단번에 매료된 것이다. 시에 비해 소설이나 평론은 글자 수가 많아서 인터넷에 퍼지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가끔씩 독후감을 이유로 자신이 읽은 글의 전문을 게시판에 적어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누군가의 독후감을 읽고 있었는데 좀 더 읽어 내려가니 아래쪽에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문장이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엔 '펼치기'란 이름의 버튼이 놓여 있었다. 그 버튼을 누르자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의 전문이 가상세계에 펼쳐졌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때의 '네티즌'들은 그런 식의 전문 올리기를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 일종의 소개 행위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당시의 나에게는 들어맞았던 셈이다. 그 글 덕분에 움베르토 에코를 좀 더 이른 시기에 알게 되었으니.


인터넷에서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을 접한 이후 서점에서 그 책을 구매하려다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이 단순히 한 개의 글이 아니라 책 제목이었다는 것과 그 책이 이미 절판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더 알아보니 다행스럽게도 그 책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어 있었다. 나는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쪽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출판사는 그 제목이 별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출판사는 최초의 번역서를 절판시킨지 일 년 만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기다란 제목으로 재출간했는데 딱히 끌리지 않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제목이 그렇다고 하여 읽지 않을 수는 없었다. 움베르토 에코가 한국어로 된 자신의 책의 제목을 보았다면 "책의 이름을 정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움베르토 에코는 출판사의 책 제목 명명법을 자신만의 웃음 코드로 사용한 적이 있는데, 재미있게도 그 글이 바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들어가 있다. 출판사 편집장이 그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걸까? 만일 이 책이 1990년대가 아니라 2000년대 중반쯤 출판되었다면 원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번역되어 <아주 작은 일기> 정도의 제목을 달고 나왔을 것이다. 출판사는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은 일기>라는 제목의 책을 2004년도에 출판했다. 물론 원제는 같은 책이었다. 만일 이 번역서가 요즘 들어 출간되었다면 원제를 있는 그대로 발음하여 <디아리오 미니모>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온갖 것들이 유행을 타니 영화의 제목은 물론 책의 제목도 예외가 되지는 못한다. 사람의 이름도 유행을 타는 세상 아닌가.


몇 십 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이라는 책을 찾고 있다. 중고시장을 뒤적대고 있는 것이다. 첫 체험, 첫 만남의 영향력은 실로 놀라운 데가 있는 것 같다. 최근 난 한 중고서적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는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이 새 책에 가까운 상태라는 설명까지 적어 넣은 판매자였다. 가격은 1,500원. 책을 구입한다는 건 집에 무거운 짐 하나를 늘리는 행위다. 이미 개정판을 가지고 있는데 이전의 판본을 구한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타인의 입장에선 소유욕과 짐 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실 나조차도 명징한 변론을 할 수가 없다. 물론 개정판을 거치며 텍스트에, 심지어 제목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변명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소유욕이라면 소유욕일 것이다. 평범한 인간에게 소유욕이 없길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내 인생의 바이블로 꼽은 책이니 이 정도 호사는 내버려 두도록 하자.



2.

이 책은 평가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비평가가 아닌 이상 독자는 자신이 읽은 책에 부정적인 평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엔 유독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는 평이 잘 달린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 '어렵다'는 평을 듣는 게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어려움'에는 존경심이 아니라 비난이 담겨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블랙 유머 형식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블랙 유머가 쉽게 통용되는 사회가 아니다. 지금도 그러하니 그때 당시는 오죽했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책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저 불평만 가득하지 않은가'라는 독자의 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난 그런 평을 볼 때마다 블랙 유머의 불유쾌함이 어째서 어떤 이에게는 유쾌함으로 반전되지 않는지를 생각한다. 내 아내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내가 아내에게 이 책을 단 한 번도 추천하지 않은 이유는 아내가 블랙 유머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난 블랙 유머를 좋아해서 심지어 입밖으로 그런 식의 농담을 종종 꺼내기까지 했다. 때론 그런 식의 농담이 문제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니, 아내가 내 블랙 유머를 이해하길 바랐다면 오히려 이 책을 추천해야 했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그런데 실은 누구나 블랙 유머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저 명징하게 의식하고 있지 않을 뿐.


몇 달 전인가, 유병재란 연예인의 스탠딩 코미디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블랙 유머를 섞어 만든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드디어 저런 식의 코미디가 나타나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성공적으로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 블랙 유머가 정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재치 있게 살아가려면 블랙 유머가 필요하다. 사실 이 대목에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책 제목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데, 블랙 유머야말로 바로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화를 내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에 항상 웃음꽃만 가득할 수는 없다. 때론 듣기 불편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블랙 유머가 도움을 준다. 정색하며 화를 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웃으면서 화를 낸다, 그리고 그 방법을 움베르토 에코가 알려준다. 아쉬운 점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그 방법을 잘 모르며 그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도 잘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움베르토 에코의 이 선구적인 책을, 그의 빈 자리를 그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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