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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화 수술, 너를 위한다는 변명의 문제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9. 2. 2. 21:12

본문

1.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 여부는 하루이틀 논의된 것이 아니다. 워낙 대립이 첨예한 탓에 이 수술은 아직까지도 개인의 선택으로 남아 있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 문제엔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사안들이 얽혀 있어 어떤 한 진영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동물에게 가한 어떤 인위적 고통을 무조건적인 좋은 행위로 간주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실내에서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일정 부류의 사람들이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은 고양이를 위한 선한 행위'라는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애쓰고 있다.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은ㅡ특히 유기 고양이의 경우, 그리고 인간의 입장에서ㅡ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근래에 그 행위를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고양이의 행복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포장하려는 시도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식의 무조건적인 중성화 맹종엔 과학의 신화가 동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암컷 고양이의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하면 자궁에 관련된 병을 예방할 수 있고, 수컷 고양이의 경우 전립선과 관련된 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자궁적출을 하면 관련된 병이 줄어들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병의 예방이 중성화 수술의 '주된' 목적이라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것은 중성화 수술로 얻는 부가적인 이득일 뿐이다. 심지어 병이 발생할지 그렇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수술이므로 이득이었는지 확신할 수조차 없다.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관련 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중성화 수술을 행한 것을 무조건적인 이득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중성화 수술의 또 다른 근거는 고양이가 발정기에 막대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교미 또한 단순히 번식을 위한 것으로, 교미 자체가 고양이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진술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인간 역시 성적 욕구를 해소시키지 못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그 강도는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성적인 욕구와 호기심이 강렬한 청소년 시기엔 하루 종일 성적인 상상만 떠오르고 그로 인해 심리적인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을 중성화가 옳다는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 또한 인간도 경우에 따라 성행위 자체에 고통을 겪기도 하는데, 남성의 전희 행위가 없어 성행위가 고통스럽다거나 남성이 성행위 직후 다른 곳으로 가버려서 심리적 외로움을 느낀다는 여성들의 사연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그런 사연을 근거로 여성은 성행위 그 자체에, 혹은 그 이후에 고통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 무조건 중성화를 시키는 게 낫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어쩌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계인은 우리를 관찰하면서 그런 식의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상의 신화일 뿐이다.


과학적 신화를 이용하여 중성화 수술을 옹호하는 측의 다른 문제는 중성화 수술의 부작용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수컷의 경우 중성화 수술 이후에 심장혈관 질환 및 골육종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무기력증에 빠지며 갑작스러운 비만과 그로 인한 각종 합병증으로 고통받을 우려가 있는데 이에 관해 대체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암컷도 다르지 않아서 중성화 이후에 악성 골종양, 방광 관련 질병, 비만 등이 몇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각주:1] 역시 이를 언급하는 경우가 드물다. 수술 자체의 위험은 또 어떠한가. 중성화 수술이 무조건 옳다는 측은 마취 알레르기, 수술 부위의 염증 같은 부작용을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은 과학과 수학 통계가 자기 편의대로 이용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최근의 연구 결과는 중성화 수술이 반려 동물의 건강에 좋은 면이 있다는 기존의 믿음조차 철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각주:2] 중성화 수술 이후 수컷은 전립선암의 발병률이, 암컷은 혈관 육종의 발병률이 중성화 수술 이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는 결과가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각주:3] 따라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신중한 병리학자나 수의사라면 중성화를 반려동물이라면 꼭 받아야 하는 수술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아직 장기적인 연구 성과가 나온 분야가 아니며 부정적인 영향 또한 상당하므로 수술 여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각주:4] 국내에선 이런 사실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수의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장단점을 잘 설명하려 노력하는 수의사들도 있으므로 정말 자신의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면 중성화 수술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전에 충분한 상담을 받아보아야 한다.



2.

동물이 가축화된 역사를 돌아볼 때 가축이 거세되었던 이유는 건강한 개체를 선별하여 그들의 씨를 퍼트리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엔 거세하지 않을 경우 고기에 배게 되는 특유의 노린내를 줄이기 위해 가축을 거세한다. 거세를 하면 육질도 부드러워진다. 더불어 동물의 성질까지 온순해지니 키우기마저 쉬워진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가축의 거세는 전적으로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행되어 왔다. 지금도 전혀 다를 바가 없어서 2014년 한 해 동안 도축된 돼지 중 수컷 돼지의 거세율은 90%가 넘었다.


'동물의 행복을 위해서 거세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난 것은 거세의 역사에서 보자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바로 가정집 '내부'에서 수많은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면서부터다. 이것을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하다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하거나 혹은 자기기만에 빠진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송아지나 돼지도 거세를 하면 성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관련 병에 걸릴 확률도 상당히 줄어든다. 하지만 수컷 송아지나 염소를 거세하면서 이 송아지와 염소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수술을 했다고 말할 농장 주인은 없을 것이다.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처한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브리더'라고 부르는 고급종 판매자들이 중성화 수술을 조건으로 고양이나 개를 판매하는 이유는 공급을 줄여 희소성으로 높이고 그를 바탕으로 비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일부' 수의사들이 중성화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그 수술이 그들의 수입에 상당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반려동물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집사들'은 자신의 이득을 생각하는 것은 조금도 없으며, 오로지 고양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중성화를 시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 믿는다면, 아마도 이들은 고양이에게 최초의 발정기가 오기도 전에 중성화 수술을 시켜버린 집사들일 확률이 높다. 이들은 고양이의 저 괴팍한 울음소리와 행위가 보기 싫다는, '죄'라고 느낄만한 감정이 생기기도 전에 중성화 수술을 시켜버린 데다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어서 그들에게 책임 전가가 가능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반성할 만한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 큰 성인이 그런 식의 선택을 한 것이라면 '무지하여 저지른 잘못도 죄'라는 다른 진영의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사실 발정기 고양이의 끝없는 울음과 방뇨 행위에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건 믿기 어려운 진술이다. 자기가 직접 낳은 자신의 아이인데도 쉴 새 없이 지르는 울음 소리에는 버티기 힘들다는 부모들이 상당하다. 우는 아이에게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낸 뒤 미안해 했다는 부모들의 사연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아이에게도 그러한데 반려동물에겐 어떠할까. 설사 전혀 짜증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매우 특수한 사례이므로 그를 가지고 일반화를 시킬 수는 없다. 즉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중성화 수술 문제에서 자신이 본 이득을 빼고 오로지 고양이의 병과 건강을 염려하는 듯 행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로 보일 여지가 크다.


만일 순수하게 고양이의 스트레스ㅡ인간의 스트레스가 아니라ㅡ와 관련 병의 예방이 중성화 수술을 주된 목적이라면 고양이의 개체수가 아주 적거나, 고양이 새끼가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거나, 고양이가 발정기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소음과 분뇨 등의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대에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할 집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가정집의 반려동물에 행해지는 중성화 수술은 결국 사람들이 도시의 좁은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 행하는 '차선'의 선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양이의 발정기 울음소리를 듣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의 고막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ㅡ즉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ㅡ고양이의 몸에 손을 대야겠다는 차선책이다. 이런 행위를 '너를 위해서'라고 부르기는 매우 어렵다. 오늘날 가축을 포함하여 동물에게 행해지는 거의 모든 종류의 거세 행위 중, 오로지 그 동물의 행복을 위해서 거세가 행해지는 경우는 반려동물에 관련 병이 이미 나타나서 제거 외에는 방법이 없을 때, 오직 그때뿐이다. 



3.

문제는 어쩔 수 없이 행해져야 하는 중성화 수술 행위, 거세 행위가 인간의 아름다운 의도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자기기만이 아닐 수 없다. 반려동물을 포함한 동물의 거세는 경제적 이득 논리를 떼놓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중성화 수술 반대 입장조차 그렇다. 중성화를 반대하는 진영에도 단순히 그 수술에 돈을 쓰기 싫다는 경제논리가 숨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자본과 경제의 논리를 뒤에 숨긴 채 윤리와 도덕만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까지 보아 왔던, 인간 스스로 증명해 냈던 부도덕한 과오들이 너무나도 많다. 


과거를 돌아보자. 흑인의 노예제를 다룰 때도, 카스트 제도로 신분을 나눌 때도, 자유와 평등에 관한 헌법을 기술할 때도 인간은 당시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 선에서 자신들이 신앙심이 깊고 정의로우며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고자 애썼다. 이런 관점은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영향을 미친다. 일부 사람들은 동물을 제한된 구역 내에서 자기 편의대로 키우고자 애쓸 뿐이면서도 그것을 합리화시키다 못해 이제 '선한 행위'로 꾸미고자 한다. 이런 관점은 노예 흑인들이 해방되어 자유 세계로 나가면 굶어죽거나 질병에 걸려 죽을 게 뻔하다면서, 흑인들을 하인으로 부려주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 믿었던 미국 남부 지주들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흑인들을 노예로 부렸던 지주들은 자신들이 선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이 취했던 막대한 경제적 이득은 언급하지 않은 채.


현대는 인간과 동물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우리는 좋든싫든 그 동물을 '이용'하며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경제 논리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음식으로 대하든 반려동물로 대하든 이용의 정도만 달라질 뿐 그 입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동물원의 문제도 그렇다. 동물과 연관된 거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는 '공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우리의 일방적인 입장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너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거기엔 자기반성이 없으며 그렇기에 반복된다. 최근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체육계의 폭력이 바로 '너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자. 체육계뿐이겠는가. 심지어 가정 내에서의 폭력도 거의 대개 '너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폭력 뒤에 주는 정신적 위로, 폭력으로 얻은 결과적 성취가 그 폭력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비록 중성화 수술이라는 일방적 폭력 뒤에 수명 연장이라는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고민해야 하며 또 반성해야 한다. 나쁜 의도(고급 품종의 희귀화를 노린 중성화 수술과 그로 인한 이득)가 좋은 결과(수명 연장)를 가져왔다면 그것을 계속 해야 할까? 좋은 의도(자연 그대로 놔두기)가 나쁜 결과(질병에 걸림)를 가져왔다면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할까? 이런 식의 고민은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 관련된 고민은 끝이 없고 또 어려워 보인다. 



4.

고민을 하되 피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자신이 동물에게 가하는 고통을 올바른 행위 그 자체로 간주하는 일이다. 자신이 남에게 가하는 고통을 선한 행위로 간주하는 것, 역사적으로 그런 행위 끝엔 언제나 파국이 있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1. Larry S. Katz, PhD, "Long-Term Health Risks and Benefits Associated with Spay / Neuter in Dogs", Animal Sciences Rutgers University, May 14, 2007 [본문으로]
  2. Caroline Warnes, The Veterinary Nurse VOL. 9, NO. 3, 20 Apr 2018, "An update on the risks and benefits of neutering in dogs" [본문으로]
  3. Larry S. Katz, PhD, "Long-Term Health Risks and Benefits Associated with Spay / Neuter in Dogs", Animal Sciences Rutgers University, May 14, 2007 [본문으로]
  4. Prof. R. John Berg, Veterinary Medical Center at Tufts University, "The Spay/Neuter Controversy and Topics in Genital Surgery"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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