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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목서, 포트와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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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손의 마우스는 금목서를 찾아 방황하느라 분주했다. 통영 충렬사에서 금목서를 보고 온 이후 증상이 심해졌다. 금목서를 구입할 수 있는 화훼 단지나 화분 가게 등을 검색해 보았으나 확실히 팔고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금목서를 쉽게 구할 수 없는 건 분명해 보였다. 어떤 이는 양재 화훼 단지를 다 돌아다녔는데도 금목서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항간에는 금목서의 성장이 빠르지 않아 판매금 대비 이득이 낮고 그래서 농원에서 재배를 별로 하지 않아 구하기 어렵다는 매우 주관적인 추론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주관성을 내 안에서 합리화시킬 수밖에 없었으니, 우리는 주관이 계속 반복되거나 마땅히 반박되지 않으면 쉽게 객관화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난 결국 금목서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로 결심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간단히 말하면 '네이버'에 '금목서'라고 친 후 엔터를 누르자 금목서를 팔고 있는 사이트들이 쭉 나열되었다. 들어가 보니 금목서의 개별 실물 사진은 없고 백과사전에서 가져온 듯한 작은 이미지들만 한 장 달랑 있는 게 전부였다. 따라서 구매를 할 금목서를 텍스트만을 보고 골라야 했는데, 식물은 항상 눈으로 직접 보고 살핀 후에 구매를 했었기에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요새는 관상어들도 하나하나 촬영하여 판매할 정도로 인터넷 쇼핑몰이 잘 되어 있는데, 신기하게도 금목서를 판매하고 있는 그 어떤 농원에서도 판매하는 나무를 직접 찍어 올리지 않고 있었다. 농원들의 쇼핑몰은 금목서에 꽃이 피어있을 당시의 모습을 다소 멀리서 찍은 한 장의 사진, 그것도 확대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한 장의 사진으로 해당 개체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양쪽을 잡아 늘린 밀가루 반죽처럼 사진이 위나 아래로 늘어져 있어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90년대 인터넷 초창기의 웹사이트에서 종종 볼 수 있던 사진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잠시 그때의 추억을 회상해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대학교 1학년 교양 과목인 '인터넷의 이해' 시간에 이런 형태를 가진 결과물들을 볼 수 있지만 그런 과제를 제출한 학생은 여지없이 'C' 등급을 면치 못한다. 


난 먼저 금목서를 살 쇼핑몰을 골랐다. 그리고 그 쇼핑몰이 팔고 있는 나무 개체를 하나 골라냈다. 오로지 내 초자연적인 감각에 의지한 채였다. 나무의 형태나 잎의 상태 등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게 주어진 정보는 나무의 크기와 수령, 그리고 가격이 전부였다. 이건 블루오션이었다. 화훼와 관련된 멋진 쇼핑몰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어 관련 업종을 완전히 휩쓸어 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원한 실내에서 우아하게 꽃꽂이를 하거나 화단에 물이나 주며 휘파람을 부는 사장님들과는 달리, 넓은 뙤약볕에서 고무 장화를 신은 채 농약과 씨름하며 굵은 땀방울을 훔치다가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못한 채 컴퓨터 앞에 앉아 굵고 거친 손으로 뜨문뜨문 마우스를 클릭해야 하는 농원 주인들의 사정을 생각하여 그 마음을 접기로 했다. 난 아직 순진하였기에 천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에 갑자기 뛰어들어 주변을 마음껏 포식하는 생태계 교란종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농원 주인은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이런 메시지 하나를 받게 되었다. "금목서 개화주 수고 1미터 1개, 결재 완료. 주소 서울시" 


농원 주인은 기다란 박스 하나에 내가 고른 금목서 중 하나를 임의로 골라 집어넣고는 테이프로 단단히 포장한 뒤 내게 발송했다. 혹시나 하여 금목서의 뿌리가 담겨 있는 작은 포트에 물을 주는 것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주인이 잊은 게 하나 있었으니 그건 묘목이 커나가면 그 크기에 맞는 화분으로 옮겨심기를 해야 한다는 기초 중의 기초였다. 


난 이 주인이 왜 그 기초를 내팽겨 쳐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관리해야 하는 식물들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아니면 금목서의 성장이 너무 왕성했던 탓일까?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어본 나는 곧 금목서의 뿌리와 한데 엉겨 있는 포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뿌리는 포트 밑바닥의 물빠짐 구멍을 빠져 나와 밖으로 뻗어 있었고, 난 곧 뿌리나 포트, 둘 중의 하나를 제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엉켜 있는 줄을 통째로 잘라버린 알렉산드로스 같은 영웅이 아니었고, 아이를 반으로 갈라서라도 가져가겠다는 솔로몬의 악녀도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내 선택은 엉켜 있는 뿌리가 아니라 몸에 유해한 화학 성분을 잔뜩 품고 있는 시커먼 색의 저급 플라스틱 포트만을 잘라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플라스틱 포트 따위가 내 앞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뿌리와 포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하나로 뭉쳐 있었다.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기적인 인간이 환경에 가한 제약마저 극복해낸 나무들의 경우처럼 금목서는 포트 밑바닥을 자신의 뿌리로 완전히 휘감고 있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포트를 절단해 나갔고, 포트의 플라스틱이 부러질 때마다 포트와 뿌리에 붙어 있던 흙은, 마치 수류탄이 터질 때 흩뿌려지는 흙덩이들처럼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이곳은 격렬한 전투로 땀에 젖은 옷과 창처럼 날카로운 포트 조각에 찔린 내 피부와 폭탄으로 터져나가는 흙이 협연하는 8월의 전쟁터였다. 금목서를 다 옮겨 심고 난 후 발코니를 청소할 생각에 내 머리는 점차 아찔해져 갔다.


열심히 포트를 제거해 나갔으나 뿌리 가장 안쪽에 박혀 있는 건 빼낼 수가 없었다. 뿌리도 함께 잘라내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뿌리 안에 포트를 남겨둔 채 그대로 분갈이를 했다. 이 작고 날카로운 플라스틱 조각은 이제 뿌리와 하나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 뿌리 속에 완전히 파묻히게 되겠지만, 이 포트가 식물 세포에 붙잡힌 광합성 박테리아처럼 먼 훗날 식물에게 유익한 존재로 진화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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