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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볶음밥, 교차감염과 0의 신비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8. 1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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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산물은 살 때는 호기롭지만 막상 다듬어야 할 때가 되면 왜 샀는지 후회가 드는 재료이다. 손질되지 않은 해산물이 특히 그렇다. 내장을 꺼내고 껍질을 벗기고 겉의 이물질을 솔로 닦아내고...... 귀찮은 건 둘째 문제이다. 공포 조장을 좋아하는 뉴스 채널은 극히 일부의 사례로 시민들의 안전을 염려하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교차감염은 이들이 좋아하는 단골 메뉴여서 해산물을 다루는 주부들이 도에 넘치는 불안증세 빠지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들은 도마나 칼을 씻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 해산물을 씻을 때 튄 물조차도 주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해산물을 씻다가 튄 물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언론이 제공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평범한 시민에 불과하였으므로 그들이 제공한 '당부'를 상기하며 오징어를 손질했다. 우선 아가미와 내장, 항문을 떼어내고 석회질의 기다란 퇴화 패각을 뽑아낸 뒤 이빨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리에 다린 까만 흡반들을 숟가락으로 문질러 벗겨냈다. 다른 것들을 물이 안 튀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흡반 제거만큼은 물이 튀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다. 숟가락이 가한 충격으로 흡반에서 물방울들이 튀어나가는 그 순간, 난 다시 한번 그 뉴스를 상기했다. "해산물을 손질할 땐 교차감염에 주의하여 주시고......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사망...... 세균성 식중독이 발생할 수 있어......" 난 싱크볼 주변을 물줄기로 씻어낸 뒤 세면대로 가 비누로 손을 씻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내에게 한 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다음엔 꼭 손질된 생선을 살거야!"


하지만 장바구니 물가에 시름하며 마트에서 더위를 피하는 동병상련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다음에 장을 볼 때도 가격표를 확인하고 말 것이다. 결국 똑같은 해산물인데도 손질되었다는 이유로 너무 높은 가격을 받는 건 부당하다며 생짜 해산물을 카트에 집어넣고 말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혹시 이거 손질해 주시나요?"라고 물으면서.



2.

웬 일인지 아내는 오징어를 동그랗게, 마치 도넛 모양으로 잘라내길 원했다. 그 때문에 오징어의 몸통을 펼칠 수가 없어서 내장을 꺼내는 데 꽤 애를 먹고 말았다. 내 손에 비해 오징어가 너무 작아서 몸통 안으로 손가락이 잘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길게 잘라내면 안 될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끝까지 버텨냈다. 어렵사리 손질한 오징어 몸통을 세로로 잘라내자 작은 덩어리들이 도마 위로 떨어져 나갔다. 아내가 원하던 바대로 속이 텅 빈 동그란 형상이었다. 설마 맛도 텅 빈 건 아닐 테지? 도넛, 휴지심, 튜브, 플로피 디스크, 반지, 콜로세움, 런던아이...... 가운데가 텅 빈 원에 대한 선호는 인류가 풀어내야 할 태곳적 신비 중 하나이다. 



3. 소스는 고추장에 고춧가루, 간장과 다진 마늘에 올리고당. 추가로 넣은 참기름을 제외하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레시피다. 오징어와 대파, 양파를 볶다가 소스를 버무려 마무리했다.


오징어볶음밥. 2018.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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