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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저기 기차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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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대한 막연한 호감은 지하철이 대중화되면서 많이 희석된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기차는 희망과 설렘을 실어 나르는 물체였다. 인근 마을이나 가까운 도시가 아니라 저 멀리까지 갈 수 있는 기차는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어주는 가교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사람들은 기차선로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기차가 다니는 그 길은 먼 도시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그 선로를 따라 걸으면 동네 한 바퀴나 돌던 어린애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기도 했다. 지금은 하면 안 되는 위험한 행동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기찻길 위에서 종종 사진을 찍기도 했다. 기찻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가 있었다.


내가 다 커서 기차에 관심을 갖게 된 사정에 그런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나, 기찻길 인근에 살게 되었다는 물리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비율로 따지면야 기찻길 인근에 산다는 이유로 기차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드물 테고 오히려 기찻길 소음에 때문에 기차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의 경우가 되고 말았다. 승강장에 선 채 청량리역이나 상봉역의 선로를 한참 동안 들여다 보기도 했고 그 얽히고 설킨 거대한 선로를 공책에 자세히 그려대기도 했다. 급기야 아직 설비가 되어 있지도 않은 회차선로를 임시로 그려 넣은 뒤 지역 정치인을 찾아가 이렇게 회차선로를 추가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제안하기까지 했으니, 내가 기차와 기차역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어느 날 난 공을 들여 그린 기차선로를 아내에게 보여주며 물어 보았다. "이거 뭔지 알아?" 나로서는 다소 용기 있는 고백이었는데 "기찻길 아니야?"라고 답하는 아내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에 약간의 자신감을 얻은 나는 곧바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승강장이고, 이건 KTX가 다니는 길이고 이건 경의중앙선 열차가 다니는 길이야. 그리고 이건......"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하던 그때, 아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요즘엔 아내가 먼저 기차를 언급할 때가 많다. 강변북도를 달리다가도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도 한강 다리를 건너다가도 아내는 외쳤다. "오빠, 저기 기차 지나간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면 '길면 기차'라고 노래 불렀던, 그야말로 기다란 기차가 사람들을 실은 채 철그덕거리며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난 얼른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가 겸연쩍게 아내에게 말하곤 했다. "당신, 철덕이었구나?" 나는 보통 사람들에겐 기이해 보일 수 있는 내 관심사가 실은 평범할 수도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아내를 이른바 '덕후'의 세계로 끌어들여 보았다. 처음에 아내는 내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며칠 전엔 "응, 나 덕후 맞는 거 같아"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왜냐고 묻는 물음에 아내는 간단히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까 어릴 적에 기찻길을 좋아했었거든."


기찻길은 어디론가 연결되고 우리는 그곳에서 내릴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할 수 있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뻔한 목적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어떤 세계에서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끌어들였다. 어쩌면 아내까지도. 결국 강제로 내려야만 하는 때가 오기도 하겠지만 우리에게 그곳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일 것이다.


강변북로 옆 KTX. 서울시, 2018. 5. 8. 아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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