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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떨어져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시

by solutus 2018. 3. 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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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아프다. 무리를 해서 더 그런 거 같다. 하지만 걷지 않을 수 없다. 발목이 아픈 건 함께 걷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하루 종일 절뚝거렸다. 비가 내려 물웅덩이가 생긴 흙바닥과 닭 스튜의 향이 맴도는 실내를. 이이언의 음악이 귓가를 떠도는 미술관과 하얀 구름이 머리 위로 떠다니는 정원을. 아이를 안은 채 뛰고 유모차를 밀며 뛰었다. 아이가 웃었다. 그래서 더 뛰었다. 때론 의자에 앉아 쉬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절뚝거려야 했다. 나의 고통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므로. 연인 사이에 고통의 일치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설사 사랑의 묘약을 마셨다고 해도. 그는 내 아픔을 보며 스스로 불행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나도 그걸 원치 않는다. 롤랑 바르트의 말대로 이것은 애정이 넘쳐 흐르면서도 예의 바른 처신. 아픔도 계속되면 익숙해진다. 어느덧 발목의 아픔이 줄기 시작하더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픔은 다시 맺혀 있는 선악과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시 깨어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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