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수도꼭지와 유년 시절

본문

1.

어젯밤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을 보는데 아나운서가 '마중물'이라는 단어를 썼다. 마중물이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아내는 펌프질을 하기 전에 펌프에 붓는 물이라고 했다. 의외의 대답에 난 적잖이 놀랐다. 펌프질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아내인데 어떻게 그런 단어를 알고 또 이해하고 있는 걸까?



2.

어릴 적 외할머니댁 마당에는 우물물을 끌어올리는 펌프 하나가 있었다. 그보다 더 어릴 적엔 우물과 두레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날 우물은 사라지고 대신 펌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주변에서 물장난을 치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그 주변에서 장난치던 유년시절의 모습이 흐릿한 사진으로 남아 있다. 외할머니는 때때로 마당에서 물을 받아오라 시키곤 하셨고, 그럼 난 냉큼 펌프로 달려가 물을 퍼오곤 했다. 그러려면 우선 펌프에 마중물을 넣어야 했다. 마중물을 부은 뒤 펌프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은 채 온몸을 이용하여 위아래로 몇 번 흔들면 펌프 입구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 그 일을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냇가에서 물을 길어오던 시절에서 펌프를 이용해 끌어올리던 시절을 넘어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급격한 변화가 수십 년만에 일어났다. 그때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쏟아지는 상수도 보급 아파트에 애뜻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나는 꼭지만 돌리면 물이 나오는 신문물의 신기함보다는 수도꼭지 그 자체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사할 아파트를 보러 다닐 때마다ㅡ마치 당신들의 옛 추억과 당대의 기적이 그 자리에 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듯ㅡ'물이 잘 나오는지를' 제일 먼저 확인하던 그 순간에도 나는 그저 수도꼭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확인하려 들었다. 내게 있어 신문명이란 물이 잘 나오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수도꼭지가 어떻게 생겼는가에 따라 판가름나는 것이었다. 그때 난 돌리는 수도꼭지가 아니라 누르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에 마음이 꽂혀 있었으니, 내게 돌리는 수도꼭지란 구시대의, 뒤처진 문명의 상징 그 자체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창 집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어머니는 이제 그만 가자는 신호용으로 이렇게 묻곤 하셨다.


"어때, 이 집 마음에 들어?" 


내 방이 생기고, 거기에 더해 수도꼭지까지 마음에 든다면ㅡ내 대답은 언제나 '오케이'였다. 



3.

그래서일까. 몇 년 전 주방을 리모델링할 때 내가 가장 신경 쓰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수전, 수도꼭지였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너무 비싸 고를 수가 없었다. 결국 아내의 의견을 따라 평범한 것을 골랐지만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수도꼭지에 대한 기이한 이상향이 남아 있다. 


이렇듯, 요즘 들어 더욱,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내가 그때 무엇을 중요시 했고 무엇을 좋아했는지, 부모에게서 무엇을 바랐었는지. 그것은 점점 커가고 있는 아이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웅얼거리는 것 외엔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저 아이가 지금 당장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좋아할지, 내 어릴적 기억을 투영해 더듬어보려는 것이다. 시절이 다르니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른의 기준이 아닌 아이의 기준으로, 내 유년 시절에 유행했던 '눈높이 교육'이라는 표어처럼,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보고 싶은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