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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감귤따기 체험, 그 허와 실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7. 11. 1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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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제주도에서 감귤 한 박스를 보내오셨다. 제주도에 감귤따기 체험을 하러 가셨다가 그곳에서 감귤을 구매하여 보내신 것이다. 박스를 열어 보니 크기가 약간 작은 감귤과 그보다 더 작아 보이는 것이 반씩 섞여 있었다. 크기가 꽤 작아보이는 감귤들의 지름을 재보았다. 지름은 대부분 약 45~47mm. 크기만 따지면 비상품 감귤로, 제주도 밖으로의 유통이 금지된 것들이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제주도 감뀰따기 체험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의 감귤따기 체험 수기를 볼 수 있었는데, 사진을 보니 그들이 따고 있는 몇몇 감귤들의 크기가 꽤 작아 보였다. 그렇게 체험을 통해 구매한 감귤의 가격은 대개 체험비 포함 10kg당 2만 원 정도. 만일 저 비상품 규격의 감귤들에 체험을 빌미로 무조건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면, 체험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매우 비싼 가격에 해당 감귤을 구매한 셈이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름이 49mm보다 작은 비상품 규격의 감귤의 가격은 보통 10kg당 1,500원 내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걸 만 원에 구매한다고 해도 소비자는 5배 이상 비싼 값을 치르는 셈이 된다. 올해부터는 극소, 극대 크기 감귤의 정식 유통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 갔을 것으로 보이나 가격 저항이 있기에 도매 거래 가격이 갑작스레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제주도 공무원들은 겨울 즈음이 되면 해마다 비상품 감귤 판매 단속에 열을 올린다. 뉴스를 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비상품 감귤을 몰래 유통하려가 적발된 업체가 나왔다. 올해부터는 지름이 49mm보다 작은 극소과, 혹은 70mm가 넘는 극대과 감귤이라 하더라도 당도 검사를 받아 10브릭스[각주:1] 이상이 나오면 제주도 밖으로 판매가 가능하도록 조례와 시행규칙이 바뀌었는데, 문제는 그럼에도 당도 검사를 받지 않고 몰래 유통을 시키려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도 비규격 크기의 감귤을 당도 측정을 받지 않은 채(혹은 검사를 받았으나 수치 미달이었기에 몰래) 유통시키려다 적발되었다.[각주:2]


그렇다면 이렇게 '감귤따기 체험'이라는 이름을 단 채 유통되고 있는 극소과의 감귤에 대해서 무어라 말을 해야 될까? 농장에서 소비자가 직접 감귤을 따가는 것이니 따로 당도 검사를 받았을 확률은 크지 않다. 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공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당도 검사에 통과했다면 굳이 체험 상품으로 판매하지는 않으려 할 것이다. 결국 일부 농장 입장에서는 크기가 너무 작거나 너무 커서, 당도 검사를 받기 전에는 헐값에 판매해야 하는 감귤들의 값비싼 판로를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획득한 셈이 된다. 체험비도 받아가며 말이다. 극소과로 보이는 감귤을 판매하는 어떤 농장은 "귤을 따면서 바로 드시는 것은 무료"라며 선심을 쓰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선심이라면 선심이겠으나 실상을 모두 알게 된 소비자가 그것을 그 마음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꼭 '체험'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택배로 판매하는 직거래는 꽤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 대개 이런 식으로 판매되는 감귤에는 상품이 아닌 가공용 감귤, 파치 귤을 많이 섞는 데다가 가격 또한 현지 도매가보다 훨씬 높게 받아 제주도 감귤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쳐 왔기 때문이다. 택배로 유통되는 비상품 감귤의 규모는 (현지 감귤 농장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당한 수준이다. 올해부터는 품질 검사 없이 택배, 즉 직거래로 유통할 수 있는 감귤의 물량을 기존 1일 150kg에서 1일 300kg으로 늘렸다 하니 그 양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제주도의 한 농업인 연합회장은 작년에 "감귤 직거래는 신뢰가 기본이라 비상품 감귤이 유통될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각주:3]며 직거래 시 1일 유통량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신뢰는 커녕 열매솎기 한 덜익은 감귤을 청귤로 솎여 택배 판매하다 단속되는 일마저 잦았으니, 제주도 어딘가에서 덜익은 감귤 나무로 '청귤' 따기 체험장 연 뒤[각주:4] 그를 빌미로 비싼 가격에 미숙과를 판매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것은 그래도 극소과의 감귤과 적절한 크기의 감귤이 섞여 있는, 일명 혼합과였다. 박스를 보니 당도 검사를 통과하였다는 스티커는 물론, 검사필, 크기 구분, 생산자 표기도 되어 있지 않았다. 판매자는 1일 300kg 이하만 직거래하고 있는 소규모 농장주인 것일까? 그래서 가격을 여쭤보니 택배비 포함하여 10kg에 3만원을 주었다 하신다. 비규격 감귤을 제주도 밖에서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와 직거래의 신뢰도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이 극소과의 귤들이 당도가 10브릭스가 넘는 알찬 감귤이기를 상상 속에서나마 바라는 수밖에. 


아, 그래도 극소과의 감귤 역시 (당도는 알 수 없으나) 맛은 꽤 있었으니 다행인 일이다. 현장 체험의 이점 중 하나는 맛을 직접 보고 나서 구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니, 비상품 규격 위주로 판매하는 사설 체험장이라 하더라도 감귤에 터무니 없이 비싼 값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라 하겠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감귤 따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지름 약 42mm의 극소과의 감귤. 적지 않은 수의 감귤이 이 정도의 크기였다. 극소과의 감귤은 당도가 10브릭스 이상이어야만 상품으로 판매가 가능하다. 2017.11.11.


  1. 100g에 들어있는 당 함량 단위. 1브릭스(Brix)는 100g당 1g의 당이 함유되어 있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2. 크기가 아니라 당도로 선별된 노지 온주밀감은 당도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본문으로]
  3. 강재남 기자, "감귤조례 개선 토론회" (한국농어민신문, 2016. 5.13) [본문으로]
  4. 제주도에는 '청귤'이라는 이름의 재래종이 따로 존재하므로 덜익은 감귤을 청귤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원칙적으로 판매 자체가 불가능했던 미숙 감귤은 작년 7월부터 '풋귤'이라는 이름으로 상품 판매가 허용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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