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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 그 작은 실타래 (2)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익숙한 길

by solutus 2017. 10. 2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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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하고도 며칠, 그날은 아이의 돌이었다. 돌 한복을 입은 아이 앞에는 간단한 돌상이 차려졌다. 휘황찬란하게 돌잔치를 준비하는 하는 곳도 있고 일반적인 생일상으로 돌상을 대신하는 집도 있는데 우리는 그 중간을 택했다. 전통적인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는 아니었지만 한복을 입은 채 앉아 있는 아이 앞에 송편과 수수떡, 각종 과일을 준비하니 옛스러운 풍경이 조금 살아나는 듯했다. 


옛 복식은 거의 잊혀져 이제 평상시엔 입을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이런 특별한 날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과거를 떠올리곤 했다. 단순히 옛날의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지나가 잊혀지고 마는 유행과는 반대되는 속성, 즉 의미 있는 양식을 품고 있다 여겨지기에 사람들의 기억에 떠오른다. 건축과 의복, 회화 양식에서 몇 백년에 걸친 변화를 겪었던 유럽인들조차도 그러할진대, 거의 비슷한 건축과 의복, 회화 양식이 고려 후기는 물론 조선 시대 내내 지속되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기억이 더 강렬할 수밖에 없다. 형태와 기능과 구조에서 보이는 어떤 통일성을 양식이라 할 때, 우리는 오래된 그 양식을 다시 한번 선보이며 우리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여전히 지속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 확인, 즉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거나 덧없지 않고 어떠하게나마 의미가 '있을' 거라는 약속이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양식을 통해 은연중에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거부하기 힘든 향수와 같은 것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 향수는 이제 거의 사어처럼 들리는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난 그 광경 앞에서 내가 완전히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을 희미하게 감지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난 이 감정이 단순히 나만의 것은 아닐 거라 믿는다. 그리고 아기의 삶에 있어 중요한 계기이자 첫 생일인 돌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을 사치라 여기고 싶지는 않다. 그 감정은 수많은 하객 앞에서 거창한 삼단 케이크를 자를 때나 둘러친 팔첩 병풍에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풍성하게 차린 잡채와 나물에서 시작된 것이었으므로.


난 돌상에 쓸 유기그릇을 꺼내 수세미와 타월로 닦기 시작했다. 아직 녹청이 생기지 않은 새 그릇이었지만 연마제로 보이는 검은 때들이 계속해서 묻어 나와 오래도록 힘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엔 여인들의 일과이자 풍속이었던 유기그릇 닦기가 이제 남자인 나에게 일감으로 주어져 있었다. 이렇듯 삶의 색은 다양한 변화와 혼합을 거치며 새로운 빛을 띠웠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새로움 속에서도 혼합되기 이전의 색의 본류를 느낄 수 있다. 유기그릇을 닦는 주체는 변하였으나 유기라는 전통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처럼. 그렇기에 유기는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끊임없이 변하는 듯한 세상에서 그렇게 우리는, 나는 우리의 바탕색과 영원으로 이어지는 실타래를 조금씩 돌려볼 수 있었다. 


이제 그날의 기억은 되돌리거나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진실로 아이에게 남게 되었다. 아주 먼 훗날, 아이가 장성하고 어쩌면 우리 부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그 날에, 아이는 자신의 옛 사진들을 들여다보다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사진에 까닭 모를 향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만들곤 했던 음식 차림에 조부모와 부모의 흔적이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지금도 그 무언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놀라운 마음으로 더듬어 보게 될 것이다.


돌잔치. 전주시,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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