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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국의 기억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익숙한 길

by solutus 2017. 10. 1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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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에 토란이 나와 있길래 몇 개를 사왔다. 토란으로 요리를 할 심산이었다. 겉은 붉은 색이지만 껍질을 벗기면 미끈거리는 하얀 알맹이가 나오는 토란은 추석 즈음에 이용하는 대표적인 요리 재료 중 하나이다. 


토란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요리 중에서도 특히 토란국은 고려 시대 문서인 <동국이상국집>에 '토란국을 끓였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래된 우리 전통음식이다. 조선 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의 8월부에도 추석에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자'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토란국이 추석에 즐겨 먹던 음식 중 하나라는 걸 암시한다. 송편은 달, 즉 하늘의 결실이요, 과일은 땅 위의 결실, 토란은 땅 아래의 결실이었으니 이 모두가 모여 세상의 결실을 뜻하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추석이 되면 이 결실을 축하하며 이들을 한 상에 같이 올리곤 했다. 이렇듯, 정확히 언제부터인진 알 수 없지만 토란국은 추석에 먹는 절식이자 궁중 요리 중 하나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가을이 되면 언제나 매대의 한쪽을 차지하게 되었다.


<세계 야채 여행기>를 지은 다마무라 도요오는 어려서부터 새해가 되면 반드시 여덟마리토란 조림을 먹었다고 썼다. 명절 음식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여덟마리토란 조림만큼은 매번 만들 만큼 집안의 대표적인 전통 요리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토란은 한가위에 즐기고 여덟마리토란은 수확 시기에 맞춰 새해에 즐겼다고 하니 일본 역시 토란을 오래 전부터 애용해 왔던 게 틀림없다. 이렇듯 토란은 추석 명절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토란을 추석 명절 음식으로만 여겼던 것은 아니다. 설날 아침, 토란국이 아닌 시금치국이 올라와 다툼이 있었다는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설명절 음식으로 토란국을 장만하는 집들도 있는 게 분명하다. 사실 토란은 언제 먹어도 좋은 음식 아니겠는가.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되면 토란 조림을 먹곤 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직접 만든 거라며 토란을 먹어보라고 권하시곤 했고, 당시 야채를 싫어했던 나는 억지로 토란 몇 개를 입에 넣어 천천히 우적거리곤 했다. 그때는 참 이상한 맛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추석에도 어머니는 토란 조림을 만드셨다. 이 정도면 어머니만의 전통 음식이라 할 만하다. 난 어머니께서 만드신 토란 조림을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입 안에 넣었다.



2.

아내는 시어머니, 즉 어머니께서 만드신 토란 조림을 보고는 처음엔 감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무리도 아니다. 토란은 껍질이 붉지만 벗겨 놓으면 꼭 감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일본에서는 밭에서 재배하는 토란을 마을감자라고 부르기도 한다니, 땅에서 나는 것까지 비슷한 이것이 감자로 오인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맛은 감자와 무척 다르다. 뭐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들리는 얘기로 경상도에서는 토란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경상도가 고향이신 분들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 걸 보니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석류 역시 경상도에서는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작은 땅임에도 지역마다 먹는 음식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하니 산맥과 강, 그리고 거대한 대지가 만들어 내는 자연의 경계가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경상도가 고향인 아내 역시 토란대(줄기)는 먹어봤어도 토란은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여 나를 긴장시켰다. 토란이 입맛에 쉬이 들어맞는 재료는 아니지 않은가. 다행히 아내는 우려와 달리 내가 만든 토란국에 좋은 평가를 남겨 주었다. 맛이 무엇과 비슷하다고 했더라? 기억에 남는 말은 '맛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표현이지만 요리를 대접하는 입장에서 그보다도 듣기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3.

장을 봐온 토란으로 조림 대신 국을 만들었다.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과 제한된 재료로 판단할 때 국을 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우선 비닐 장갑을 낀 채 토란을 씻고 물에 2분 정도 데친 후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알토란들을 4등분 한 후 소금물에 넣어 5분 정도 삶았다. 토란을 살짝 데치면 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고, 소금물에 5분 정도 삶으면 토란의 독성을 없앨 수 있다. 냄비에 토란과 닭가슴살을 넣어 참기름으로 볶다가 여기에 물과 얄팍썰기로 썬 무, 그리고 다시마를 넣어 15분간 끓였다. 보통 소고기를 넣지만 조선 후기 고조리서인 <시의전서>에 '닭을 넣으면 좋다'고 되어 있는 걸 참고하여 닭가슴살을 썼다. 어느 정도 끓자 다진 마늘과 잘게 썬 대파, 소금, 그리고 후추를 넣어 마무리했다.



토란국.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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