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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2) - 엿기름, 삼베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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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집에 삼베 망 없지? 엿기름 짜낼 때 삼베 망 있으면 좋은데."


물을 채운 볼에 엿기름을 부은 뒤 몇 번 짜내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엿기름을 그냥 물에 풀어 짜내려니 엿기름 가루가 사방으로 퍼져 손으로 움켜쥐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삼베 망이 있으면 좋으련만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에 그냥 물에 풀어 짜내려고 한 것인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릴없이 아내에게 삼베 망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기에 기대를 품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내의 대답은 '있다'는 것이었다.


"서랍 안쪽에 있어. 어머니께서 주신 거야."


서랍 안을 살피니 하얀 빛의 조그마한 삼베 망이 몇 개 나왔다. 어머닌 언제 이런 걸 아내에게 주셨던 걸까. 대부분 작은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큰 게 하나 있어 그걸 쓰기로 했다. 물에 흐트러진 엿기름을 모두 모아 망에 담으니 전부 그 안에 들어갔다. 


엿기름을 담으며 몇 개의 조그마한 삼베 주머니를 보고 있자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저 주머니들은 어머니께서 우리의 결혼 전후에 아내에게 주셨던 것일 테다. 작고 새하얀 삼베 주머니. 어느 색에도 물들지 않은, 다소 가냘파 보이는 작은 망의 모습이 세파에 맞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만 하는 신혼부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혼부부에게 어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 망은 어두운 색으로 물들고 씨실과 날실이 흐트러지면서 올이 풀리게 되겠지. 하지만 그만큼 부드러워진 상태이리라. 난 물조차 튕겨내 버리는 빳빳한 새 망을 물에 적셔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제 새 망은 외부의 물기를 그대로 흡수하며 받아들였다. 서로 다른 신랑과 신부가 만나고, 난생 처음 아이를 만나고. 이 모든 만남은 빳빳한 삼베 망이 부드럽게 되어가는 과정처럼 일련의 적응을 필요로 했다. 아마 어머니도 신혼 초에 저런 삼베 망을 당신 어머니에게서 받으셨던 거겠지. 할머니 역시 그 윗대로부터 그렇게. 어쩌면 우리도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2.

엿기름을 삼베 망에 담은 뒤 손으로 눌러 짜냈다. 손으로 누를 때마다 우윳빛의 엿기름 물이 삼베 망 밖으로 흘러나왔다. 많이 짜낼수록 좋기 때문에 볼에 물을 조금씩 담아 여러 번에 걸쳐 엿기름 물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든 엿기름 물을 한데 모은 뒤 앙금이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앙금이 섞이면 식혜가 탁해지기에 앙금이 모두 내려앉은 후의 윗물만 따로 모아 미리 만들어 둔 고두밥 위에 부었다. 이제 엿기름 물에 들어있는 효소가 조리사가 되어 고두밥의 전분으로 음식을 만들 차례였다. 효소가 활동하기 좋게 전기밥솥에 넣어 보온 기능을 켠 채 일곱 시간을 두었다(원래 목표는 여섯 시간이었지만). 밥알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발효가 끝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식혜에 설탕 반 컵을 섞고 한 차례 끓여 내어 효소를 조기 퇴근시키면 식혜가 완성된다. 식혜는 차갑게 식혀 병에 담아 냉장실에 넣어 두었다. 


엿기름을 짜낸 삼베 주머니. 2017. 8.25.


식혜. 2017.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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