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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들의 시대와 문장가의 도시에 관해 말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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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들이 자신들의 힘과 기술을 자랑했던 고대의 경기장은 군중들의 함성과 격정으로 넘쳐흘렀다. 군중들은 한 곳에 몰려들어 인간 사냥이라는 현란한 관심사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제 그 구경거리는 불법적인 것으로 치부되었고 그때의 군중들은 새로운 구경거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주인 없는 승냥이 무리처럼 먹이를 찾아 떠돌던 그들은 중세의 이단 사냥과 근대의 이념 낙인찍기를 거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현대에 도달하게 되었으니, 그들은 이곳에서 우리가 창조해 낸 두 가지 위대한 유산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하나는 스포츠였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의 덧글이었다.


콜로세움의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현장에 놀라 관중들을 혐오스러운 비인간적인 부류로 매도하였던 인간적인 이들마저 현대의 이 놀라운 구경거리에 뛰어들었다. 콜로세움에서 우아하게 엄지손가락을 흔들고 예수의 십자가형 선고에 환호하며 마녀의 처형식이 열리는 시장에 몰려들어 정의의 돌덩이를 던지던 자들의 후예들은 현대에 와 둘로 나뉘게 되었으니, 한 부류는 경기장 관객석으로 이동했고 다른 한 부류는 인터넷 뉴스와 카페, 유튜브 등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터넷 설전에 참여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콜로세움의 관중들이 검투사와 야수 들이 흘리는 피와 고통스러운 절규에 환호했다면, 오늘날 인터넷을 기웃거리는 관객들은 일상에 지쳐 식어버린 자신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줄 시빗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뉴스 기사 하나를 읽더라도 그 기사 밑에서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지를 더 궁금해 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혀와 육체를 가지고 싸우던 저급한 전사의 시대를 지나, 글로 부딪치는 우아한 문장가들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과거 무뢰배의 허튼소리가 과감할 수 있었던 건 말이라는 행위는 혀와 입을 출발한 그 순간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말은 기록에 남지 않았고 편지로 부쳐지지도 않았으니, 에코처럼 무한히 반복하지 않는 한 비난의 대상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외부에 드러내야 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할 땐 수틀린 상대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자신의 턱에 주먹 몇 방을 허용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피를 흘리기도 했고 그 덕에 자멸하기도 했으며 자꾸 씰룩거리려는 입술을 꾹 닫은 채 침묵을 유지하기도 했다. 


반면 오늘날의 문장가들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기에 과감하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방패 삼아 있는 힘껏 자신의 창을 내던진다. 이들은 단단한 방패 뒤에 숨어 있기에 과거의 무뢰배들처럼 몇 방 맞을 각오를, 때론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대담하며 침묵을 지키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들의 손가락은 그들의 생각보다 빠르다. 그럼에도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ㅡ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일천 년 전 한 가톨릭 성인의 축일에 데인인을 학살했던 자들의 노랫소리를 알지 못하지만, 일천 년 뒤의 우리 후손들은 약자와 피해자와 소수자에게 남겼던 우리의 조롱을 명확히 기억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기록으로 남기고 말았기에. 그 기록은 주인 없는 기록이다. 몇 달 전, 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 넣었던 덧글을 남겼던 한 문장가는 자신이 썼던 그 덧글을 다시 읽게 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글인지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피해자는 남고 악당은 대중의 무리 속으로 사라지니, 우리의 후손들은 이 시대의 표지에 '악당들의 시대'라는 부제를 붙여 놓을 것이다.


과거, 자연의 위대함은 모든 것을 재에서 재로 돌려보냈다는 것에 있었다. 오늘날 자연에 대비되는 인간의 위대함은 하루를 살면서도 천 년을 살 것처럼 구는, 그 천 년을 살기 위해 어둠 속을 기어 다니는 영속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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