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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7. 5. 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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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덩 오브 헤븐"이 내게 커다란 인상을 남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난 그 영화를 몇 번씩 다시 보곤 했는데 감동은 항상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훌륭한 시나리오에서 찾았다. 또한 뛰어난 고증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중세를 다룬 시대적 배경과 십자군이라는 상징적 사건, 살라딘이라는 매력적인 인물 때문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주인공이 대장장이라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현혹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끊임없는 호기심의 충동이 어디에서 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을 뿐더라 심지어 천시하기까지 할 만한 일에 난 왜 끌리는 것인가? 한번 호기심이 생기면 그걸 해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날 괴롭혀 온 하지불안증후군은 어쩌면 이런 내 천성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해소하지 않은 채 억누르고 있으면 내 과민한 정신이 신체 하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럼 난 이제 잠들지 못한 채 밤을 홀딱 새버리고 만다. 온 정신을 써서 그 호기심을 어느 정도 채우고 나서야 난 만족하고, 그제야 하지불안증후군도 잠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풀 수 없다면 난 운동이라도 해서 내 신체에 딴 생각이 들지 못하도록 날 강제해야만 했다.


저기 어디선가 탕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아래 모루가 보이며 정신을 집중한 채 조심스럽게 금박을 새겨 넣고 있는 기술자가 보이는 듯하다. 대장장이, 어쩌면 세공사. 난 위대한 인물이며 많은 사람들의 영적 지도자이고 세상의 구원자라는 예수가 목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곤 했다. 그것은 종교를 떠나 내게 어떤 알레고리로 작용해 왔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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