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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먼지, 작은 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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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소년이 초등학교 근처에서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등굣길을 가득 채운 학생들은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채 줄곧 지나쳤지만 소년은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년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손에는 하얀 휴지조각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 휴지에는 노란색 액체가 묻어 있었다. 소년은 잠시 휴지조각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듯하다가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소년은 계속 길을 걸어가며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마침 소년을 알아본 같은 초등학교 학생이 그에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소년은 입을 굳게 닫은 채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쳤다. 소년은 마치 입을 열어서는 안 되는 마법에 걸려 있는 듯했다. 마침내 소년은 자신이 찾던 걸 발견한 듯했다. 소년은 부리나케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엔 도로 옆으로 난 배수로가 있었다. 소년은 누가 자기를 보고 있지 않은지 주변을 확인한 후 배수로 위로 몸을 기울이고는 입을 벌렸다. 그 안에서 침과 함께 섞여 있던 노란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객담이었다. 몇 번의 작은 기침 후 소년은 주머니에 있던 휴지로 입술을 닦고는 눈을 감은 채 입을 크게 벌려 숨을 들이마셨다. 숨을 내쉬는 소년의 폐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물이 가볍게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2.

"천식입니다." 


의사가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는 그녀의 손에는 흔들면 딸깍소리가 나는 기관지 확장제가 들려 있었다. 소년은 숨쉬기가 어려워질 때마다 입에 기구를 대고는 확장제를 뿌렸다. 가끔씩 발작적으로 증세가 악화될 때를 빼면 견딜만 하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하지만 기침을 할 때마다 입안에 고이던 객담은 소년을 자주 괴롭혔다. 소년은 주머니에 항상 휴지를 가지고 다니며 그곳에 객담을 남몰래 뱉어내곤 했지만, 휴지가 다 떨어지고 나면 객담을 입에 문 채 뱉을 곳을 찾아 돌아다녀야만 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길바닥에 게워버리기엔, 그런 게 자신의 몸 속에 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주기엔 소년은 아직 너무 어렸다.



3.

며칠 전 에어컨을 살피는 내 눈은 미세먼지 필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일반 미세먼지만 거를 수 있는 에어컨이 있고 PM 1.0의 초미세먼지까지 감지할 수 있는 에어컨도 있네......' 에어컨은 냉방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내 눈은 그걸 넘어 공기청정 능력을 계속 보고 있었다. 정전기 필터, 헤파 필터, 필터 교체 시기, 필터 세척 방법, 필터의 센서 민감도...... 


'소아천식에 걸린 유아들은 보챔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어느 기사엔 그런 설명이 올라와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려서 자주 울었다고 했다. 어쩌면 천식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난 내가 언제부터 천식에 걸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시 내 눈이 미세먼지 필터의 종류로 향했다. '초미세플러스 필터, 초미세 미니필터....' 에어컨을 사는 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 찰나, 갑자기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입을 굳게 다문 채 휴지통을 찾아 헤매던 한 소년의 기억들. 거실에서 아내와 놀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엔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설명으로는 결코 이해시킬 수 없는 것들. 난 다시 미세먼지 필터를 찾아 에어컨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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