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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기행 (22) - 카페, 한량2010, 제주의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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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대지와 하늘이 간신히 자신을 구분해내기 시작하는 박명 무렵 우린 아침 식사를 했다. 새벽부터 서두른 까닭은 이른 아침 완도로 출항하는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판포리에서 1시간을 달려 제주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지만 미리 예매를 하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배에 차를 선적하기 위해 한일카훼리1호를 눈앞에 둔 채 차 안에서 20분을 기다렸지만 승선관리원은 결국 내 앞에서 팔을 엑스자로 그은 뒤 떠나버리고 말았다. 예약된 차량을 싣는 것만으로 배가 만선이 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 다음 배를 타려면 5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잠을 3시간만 자며 차를 몰았던 건 그렇게 헛되이 돌아가 버렸다. 제주가 이렇게 우리를 떠나보내기 싫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제주는 그의 모든 시도가 짝사랑으로  그치고 말 것을 정녕 몰랐단 말인가? 다음 배를 타기까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 그 시간을 어쩌면 좋을지 고민해야 했다. 비만 내리지 않았으면 갈 곳이야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는 우리의 떠남에 이별의 눈물을 흩뿌리며 배앓이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방적 이별 통보라는 무심한 처사에 바다마저도 연무로 희미해졌다. 항로를 감춰 우리를 영원히 이곳에 묶어두고 싶어하는 것처럼.


우리는 서울에서 맞추려고 했던 아이의 예방접종을 제주시보건소에서 치른 뒤 어느 카페에 들르기로 했다. '한량'이란 이름의 카페였다. 그 카페를 어느 곳에선 '한량2010', 또 어느 곳에선 '한량8283'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긋난 상호에 이미 길을 한 번 헤매고 난 뒤였지만 네비는 그 뒤에도 우리를 영 이상한 곳으로 이끄는 듯했다. 네비가 하는 말이라면 거의 맹목적으로 추앙하던 나였지만 그가 오래된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골목길로 날 인도할 때는 의심이ㅡ물론 내가 그에게 주소를 잘못 알려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행히도 곧 한량의 정체가 밝혀졌다. 한량2010은 옛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카페였다. 양옥 주택은 자신의 외형을 유지한 채 내부의 변화는 자녀들에게 내주는 선택으로 개방형 카페라는 유산을 후대에 남기고 있었다. 옛 양옥 주택 특유의 마당 대문과 현관의 포치를 넘어 카페로 들어설 때, 과거와 현재라는 두 세대가 나를 포근히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로베르트 무질이라면 다음처럼 썼을 것이다.


"그 집의 지붕은 17세기 것이었고, 정원과 위층은 16세기의 모양을 띠었으며, 개축되었지만 약간 부서진 채로 남아 있는 정면은 19세기 것이어서, 전체적인 외양은 마치 겹쳐 찍인 사진처럼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집은 사람들이 멈춰서서 틀림없이 '아! 하고 외칠 만한 집이었다."



2.

궃은 일 뒤에 다가오는 기쁨은 그 정도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슬픈 이별 뒤에 다가왔던 사랑은 위험한 유혹일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니 만일 내가 이 카페에 느꼈던 아늑한 호감을 제주와의 이별을 앞에 둔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나의 무례했던 통보와 그의 짝사랑이 가져온 시련 때문이라고 한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피난길 위에서 먹게 되는 찬의 씁쓸한 감미로움을 훗날 재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이 카페에서 들어서던 그 순간 이 카페는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감정의 찌름, 푼크툼이 되어 나의 기억을 차지하고 말았다. 


"스탬프 찍어 드릴까요?" 직원이 묻는 말에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가 물었다.


"왜 안 찍었어? 제주도에 또 올 거라며?"


미래는 기약할 수 없는 것. 언젠가 다시 왔을 때 그가 우리를 기억해 줄지 모르겠다. 편지를 써야 한다는 이유로 이별을 종용받았다는 김화영 교수의 일화가 떠올랐다. 편지의 감수성을 위해 우린 때때로 떠나야 했다. 카드에 스탬프를 받아왔더라면, 마치 편지처럼, 때때로 그 카드를 들여다 보며 스탬프라는 답장을 받기 위해 제주도로 다시 떠날 그 날을 기약하게 되었을까? 내가 다시 제주로 돌아간다면 그것을 한쪽만의 짝사랑이었다고 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제주가 내게 베푼 것을 생각하면 결국 그것은 영원한 짝사랑으로 남게 되리라. 내가 그에게 남겨준 것은 보잘것없었으므로. 결국 삶이란 우리가 짝사랑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제주를 떠나기 2시간 전ㅡ찌름의 기억, 그 감정에 이르렀던 순간들을 이 카페에 앉아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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