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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18) - 마을 한 바퀴 돌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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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도에서의 두 번째 거주지인 한경면 판포리 마을은 첫 번째 거주지인 성산읍 시흥리 마을에 비해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었다. 집 건너 바로 집이 있는 경우가 잦았던 시흥리에 비해, 판포리는 집 옆에 상대적으로 커다란 논밭이 있을 때가 많았다. 빈터도 많아 때로는 황량하게 보이기도 했다. 바닷가와 가까운 탓인지 이곳에도 어떤 열기가 불어 일부의 땅은 도저히 시골땅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가격은 오를 대로 올라 있었지만 일부의 땅은 건물이 올라서지 못한 채 잡초로 우거져 있었다.

판포리에서는 시흥리에서 보지 못한 작물들을 몇몇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선인장을 들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백년초라고 부르는 이 선인장은─판포리의 윗동네인 월령리에서 기르고 있는 양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마을을 도는 중 간간히 구경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또 다른 것은 옥수수와 브로콜리였다. 반대로 시흥리에서 이따금 볼 수 있었던 귤나무와 유채꽃을 이곳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남북, 위아래의 차이는 쉽사리 이해가 갔지만 동서의 차이는 언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위도, 고도, 경도로 구분되는 자연사뿐 아니라 나이, 계급, 성별로 구분되는 인간사에 있어서도.

 

2.

판포리에는 팽나무가 많았다. 때로는 기이한 형상을 한 팽나무도 볼 수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쪽 방향으로만 자라고 있는 팽나무들이 심심찮게 서 있었다. 마치 마을의 입구를 기리려는 듯 길가 양쪽으로 아치를 그리며 서 있던 한 쌍의 팽나무도 다소 한쪽 방향으로 쏠린 채 자라고 있었다.

"저것 봐, 부부 팽나무야." 아내가 팽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이가 좋지는 않은가 봐. 싫다며 도망가는 아내를 남편이 쫓아가고 있는 형상이네." 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가지들을 보며 내가 말했다.

아내는 한 쌍의 팽나무를 그렇게도 볼 수 있다는 것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것이 참 특이한 생각이라는 것을 표정에 숨기지 않았다. 난 창의력은 중요한 것이라며 자못 진지한 척을 해댔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 팽나무들은 한쪽으로 자라는 듯했지만 다른 방향으로도 열심히 가지를 뻗고 있었다.

 

3.

마을을 돌고 돌아 다시 집이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뒤쪽에서 '아'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 보니 아내가 코를 감싸 쥐고 있었다. "머리로 코를 박았어." 아내가 안고 있던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코를 감싸 쥔 아내를 말갛게 응시했다. 문득 이상한 냄새가 나면 코를 꼭 부여잡은 채 방방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여자가 내 아내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빠져들었다. 여전히 코를 말아 쥔 채 나를 바라보던 아내가 "왜?" 하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그녀 앞에서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나뭇가지가 자라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판포리 마을 2017. 4.16.
판포리 마을. 2017.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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