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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의 문제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7. 3. 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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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 마르코 복음 5장 8~9절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도덕적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그 출발이 어떠하든 간에 결국 인간은 성인이 되어가면서 도덕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 즉 동물과는 구분되는 특수한 성품을 띠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거의 모든 문제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동물과는 다르다는 생각, 그것도 올바른 방식으로 다르다는 생각, 나는 타인보다 도덕적이라는 생각, 저 단체보다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도덕의 권위는 타인과 나를 구분 짓고, 내가 타인을 억누르거나 위에 올라설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그런 태도는 도덕이라는 단어와 무척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근현대의 수많은 심리실험과 연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이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각주:1] 우리가 스스로 부여하는 도덕은 근시안적인 행위에 불과하여, 더 넓은 시야에서 내려다보면 결국 아집의 형태로 드러날 뿐이었다.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좋은 예시로 들 수 있다. 어떤 이가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다. 여기에는 별문제가 없다. 그는 그 행위를 하며 자신을 도덕적 인간이라 여기기 시작한다. 이 순간까지도 큰 문제는 없다. 문제는 다음에 발생한다. 그는 이제 자신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는 사람을 부도덕한 인간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자신의 양심이 아니라 누군가의 은근한 강요에 의한 것, 혹은 타인의 무관심으로 인한 간접적 피해 행위로 규정하기 시작한다. 인간적 미덕이 어느새 타인에 대한 미움로 변질된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좋은 일을 했어. 그만큼 선하고 도덕적인 인간이지. 그런데 저 친구는 안 해. 나 몰라라 해. 그러니 나쁜 사람이야. 그래서 저 친구를 볼 때마다 고통스러워. 그는 내가 청소한 거리에 무임승차하고 있거든. 난 착하고 좋은 일을 함에도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지. 이 세상은 날 몰라줘.'  


위 대사는 독백체이지만 현실에서는 대개 독백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설득과 강요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행위는 작은 차원에서는 도덕적이었으나, 조금 더 위에서 바라보면 악의를 띠고 말았다. 오늘날 가족을 포함한 공동체 기피 현상은 (비록 많은 뉴스에서 다루고 있듯 경제적 여건과도 연관이 있긴 하겠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이기적 도덕성을 피하려는 경향에서 출발한다. 가족을 구성하는 원천은 이성에 대한 사랑에서 오지만, 그 사랑이 실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협소하며 근시안적일 거라는 불안이 우리를 덮친다. 게다가 그 불안은 대개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럴 바에야 가족에서 멀어지는 게, 공동체를 떠나는 게, 속 편하게 혼자 지내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만연하게 되었다.


자신을 정의라고 외치는 이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중의 하나는 자신의 행위가 옳다고 믿는 사람을 찾는 일이다. 어려운 일은 자신의 도덕을 기준으로 경계선을 그리지 않는 이를 찾는 일이다. 우리는 사랑과 도덕으로 무장한 뒤 자신의 편에 서지 않는 쪽에 지시와 강요라는 총구를 들이밀며 위협을 가한다. 


'내가 이만큼 일했는데, 내가 이만큼 벌어왔는데, 내가 이만큼 아이를 돌봤는데, 내가 이만큼 인생을 희생했는데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했는데, 그런데 너는, 그런데 너는......!' 


지금도 우리는 신의 사랑을 근거로 들며 전쟁을 일으켰던 중세인들을 어리석다며 비웃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도덕적 영토 전쟁을 지적당하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성인군자인 척하지 말기를 충고할 뿐이다. 



  1. 수많은 도덕 실험 중에서도 참가자가 양심적이고 상냥할수록 잘못된 명령(상대방에게 고통을 가하는)에 쉽게 복종한다는 것을 밝혀낸 실험은 도덕적 인간이 결과적 선과 무관하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자신을 선하다고 믿지만 결과적으로 악한 행위를 돕는 데 쉽게 이용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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