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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집안 청소에 대해 말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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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을 청소한다는 일이 먼지를 그저 눈에서 안 보이게 만드는 행위였던 시절이 있다. 그 시대에는 먼지털이개라는 것이 주요 청소 도구 중 하나여서, 털뭉치가 끝에 달려 있는 긴 막대기를 한 손에 들고 다니며 먼지가 쌓여 있는 곳마다 휘둘러대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그것은 청소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놀이였다. 그런데 그 놀이는 집안에 상당한 먼지가 날리게 하여 집안의 공기를 탁하게 하는 데가 있었다.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는데, 그 시절에는 아무 때나 집 안팎의 문을 모조리 열어 환기를 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오히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먼지털이개를 쥐어주며 먼지를 털 것을 종용했다. 다만 물건을 넘어뜨리지 않도록 주의를 줄 뿐이었다. 도둑 걱정을 하지 않아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아도 되었던 야불폐문의 시대처럼, 그 시대의 어른들은 바깥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올까 걱정하지 않은 채 항상 창문을 열어 두고는 아이들이 먼지털이개를 가지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요순시대의 재래인 양 기꺼워했다. 아이들은 뛰놀면서 청소했고, 집안에서 나온 모든 것은 바깥 세상과 자연스럽게 순환했다.


이제 청소를 할 때 먼지털이개를 쓴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집안에서 이불을 터는 행위조차 금기시하기 시작했으니, 작은 TV 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는 것이 공동주택에서 살아가는 예의가 된 이 세상에서, 먼지라는 존재는 바깥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현대인의 또 다른 자화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창문을 쉽게 열지 않는다. 창문을 열기 위해선 먼저 그날의 날씨를 확인해야만 한다.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 후 오늘도 창문을 열 수 없음에 한탄하는 이 시대는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하는 오늘날처럼 무수한 먼지들을 집안에 품고 있다. 그들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먼지를 털어내어 눈에서 보이지 않게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집안 어딘가에 다시 쌓이기 때문이다. 먼지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만족은 일순간의 환상인 셈이다. 그것은 공기중으로 흩어졌다가 곧장 우리의 폐로, 거실의 한쪽 구석으로 거처를 옮긴다. 급한 불을 끄기 바쁜 카드 돌려막기와 남녀의 자존심 다툼과 정치권의 해묵은 현안이 집안 청소라는 악순환의 구조를 통해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16세기 이후 태동하기 시작한 과학주의와 기술만능주의는 그 우울한 반복의 시대에 하나의 해법을 제시했다. 미세먼지를 99.999% 제거한다는 놀라운 필터를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다. 창문 상시 개방의 축복을 누렸던 빗자루와 먼지털이개는 혜성 같이 등장한 진공 청소기에 수천 년간 이어왔던 자신의 영광을 내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곧 반전이 일어났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 상시 폐쇄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진공 청소기는 미세먼지를 흡입했다 다시 배출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라는 오명을 써야만 했다. 그야말로 먼지 발생기라고 할 수 있는 먼지털이개조차 받지 않았던 비난에 힘들어 했던 진공청소기는 이제 미세먼지 제거 필터의 등장으로 폐쇄된 사회의 먼지를 제거할 구제자가 된 듯했다. 집안의 모든 먼지는 어디로 도망치지 못한 채 청소기의 먼지통에 구금되었고, 그대로 쓰레기 비닐 봉지에 담겨 바깥 세상으로 퇴출되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믿었다. 우리들은 광고주들에게 악의가 없다고 믿는 순수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주의를 우려하는 일부 부정적인 집단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진공 청소기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까지 빨아들인다고 광고하는 것은 청소기의 당연한 기능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진공청소기가 무거운 것보다 가벼운 것을 보다 쉽게 빨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므로, 광고주들이 자사의 청소기가 초미세먼지까지 빨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환논증적 오류인 셈이었다. 게다가 해당 필터가 미세먼지를 99.999% 제거한다고 광고하면서도 보다 큰 문제인 초미세먼지는 얼마나 제거하고 있는지 수치를 공개하고 있지 않으며,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사실상 공기중에 떠 있기 때문에 바닥을 청소하는 진공청소기로는 실내 미세먼지 제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라는 오래된 진리가 그들을 방해했다. 진공 청소기가 전하는 놀랍고도 신성한 교리를 지속적으로 전파하던 체험단이란 이름의 일부 사도와 그 신도들은 자신의 헛점을 비판하는 단체를 부정적이라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품의 좋은 점을 말하는 자신들은 빛이었고, 제품의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지적하는 그들은 어둠이었으니, 어둠은 그르고 빛은 올바르다는 논리가 그런 식으로 적용되었다. 이것은 자신의 아이에게 비염이나 천식, 아토피가 발생하면 그것이 자신이 집안 관리를 잘못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 혹은 그 윗조상들에게서 내려온 유전자 때문이라는 논리와 부응하여 더욱 멀리 전파되었다. 자신을 돌아보고 비판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무조건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중독된 우리 사랑받지 못한 세대는, 본인이나 아이에게 발생한 잘못을 유전자라는 편리한 물질에 넘기게 되었다. 어떤 문제가 유전자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올 때마다 그 문제가 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에 환호하는 현대인들은 새로운 잘못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이 유전자 때문은 아닌지 과학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탈모, 난시, 아토피, 비만은 물론 백선증, 치핵, 수면과다, 만성피로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유전자 탓이길 바라는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게으른 것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 실은 유전자 탓이라니, 우리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제 광고주들을 대변하는 그의 신도들은 완벽한 청소기를 사용하고도 집안 먼지에 시달리는 것은 현대 진공 청소기의 잠재적 문제와 한계 때문이 아니라 당신과 그 조상들이 가진 원초적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니 이 청소기를 즐기라고, 그렇게 즐길 줄 아는 빛이 되라고 말한다. 과학주의는 이런 방식으로 종교를 대신해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그것은 네 탓이 아니야. 네가 어찌할 수 없는 유전자 탓이지." 과학만능이 주는 이 위로를 무엇이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네가 더 열심히 노력했으면 극복할 수 있었을 거라는, 이제 고리타분한 것으로 떨어져 버린 한때 위대했던 정신이? 신도들이 내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쟤는 매사에 부정적이야... 네가 이해하렴..." 그러니 빛이 되자. 제품의 장점만을 찬양하여 사람들에게 하트를 얻고 광고주의 이쁨을 받으며, 당신 또한 그들과 함께 영원의 지복을 누리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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