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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람들의 분노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6. 9. 2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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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에겐 자신이 하는 일, 특히 취미를 인간의 정신적 측면과 연결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곧잘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 하며 즐거워하곤 한다. 예를 들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별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검도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거기엔 그렇게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서 은연중에 그 무리에 속한 자기자신 또한 높이고자 하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그건 다소 헛된 소망에 불과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그리 해가 되거나 흉이 되지는 않는다. 중국의 한무제 때 동방삭을 비롯한 수많은 선비들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글을 올려 관직에 등용되기를 희망했으니[각주:1],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적당한) 욕망이 건전한 것으로 치부되는 오늘날엔 더더욱 문제삼을 것이 없게 되었다.


대개 문제가 되는 건 자랑이 아니라 시샘이었며, 마찬가지로 과한 인정이 아니라 엄격한 무정이 화를 키우곤 했다. 사람이란 아무래도 자신보다 남을 탓하기가 쉽고, 장점보단 단점을 더 수월하게 찾는 법이다. 엄격함을 세우는 일에도 마찬가지일 때가 부지기수라, 남녀노소가 서로 다툰 이유를 들어보면 상대에게 가져다 댄 잣대의 엄격함이 문제가 된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잣대를 대어 시비를 가리려 하지만 종국에는 다투게 된 원인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다음 세 가지의 적절성을 가지고 끝없는 논쟁을 벌이게 될 뿐이니, 그것은 바로 눈금 간격의 적절성(이렇게까지 심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는가), 평가 방식의 적절성(이것은 자가 아니라 저울로 재야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자격의 적절성(나를 시비하려는 자가 적절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그 잣대로 먼저 심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각주:2]의 여부이다. 



2.

마음속에 화를 담고 사는 사람들 중엔 그 화가 오롯이 자기자신에게서 온 경우가 많았다. 특히 예와 법도를 지나치게 철저히 따지려고 할 때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일례로 정약용이 <목민심서> 율기편에 적은 일화들을 들 수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패주자사 사문은 자신의 아들이 고을 수령의 음식을 먹었다고 하여 옥에 가두고 곤장 2백 대를 때렸으며,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적발하여 관대하게 봐주는 일 없이 1천 여명을 귀양보냈는데 그들 모두가 풍토병으로 죽어 가족들이 울부짖었다. 사문은 그 가족들이 규율을 어지럽힌다 하여 붙잡아다 매를 때렸는데 울부짖는 소리는 더 심해질 뿐이었다. 사문은 그렇게 자신의 엄격함을 지키려 하였으나 그 일로 칭찬받기는 커녕 "포악함이 맹수보다 더하다" 하여 파면되었고, 그 일을 두고 정선은 이렇게 말했다: "상관이 탐욕스러우면 백성들은 오히려 살 길이 있으나, 청렴하고 각박하면 바로 살 길이 끊어진다고 하였으니, 고금을 통해 청리의 자손이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각박함 때문이다."[각주:3]


엄격한 평가보다 인정이 빛을 발했던 일들은 더 있다. 


조선 정조 때 구월산이 무너져 30리나 되는 지역이 매몰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과 논밭이 상한 일이 있었다. 이때 현감이었던 김희채가 나와 살피니 백성들이 그를 맞아 통곡하였고, 그 역시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기에 백성들은 감격하여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하였다. 김희채는 백성들의 소원을 묻고는 곧장 감영으로 달려가 백성들의 소원을 다 조정에 보고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감사는 괴로워하며 "공은 어질기만 하지 일에는 어둡다" 하고는 장계를 올려 유능한 자로 바꿔줄 것을 청하였다. 결국 현감은 바뀌게 되었고, 그리하여 김희채는 그 지역을 떠나야 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몰려와 그를 열 겹이나 에워싸고는 그가 떠나는 것을 막으니 그는 그곳에서 10여 일을 묵다가 밤에 몰래 빠져나와야 했다. 백성들은 그 사실을 알고 어린애가 어미를 잃은 듯 통곡하였다. 이를 두고 정약용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인()에 있는 것이지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평하였다.[각주:4]


또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서거정이 <필원잡기>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판중추부사 조오는 수령이 되었을 때 여름에 농어가 많이 쌓여 썩게 되더라도 자신의 가족들에겐 조금도 맛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청렴함에 탄복하기도 하였으나 일부는 "땅에 버리는 것보다는 집에서 조금이라도 먹게 하는 게 나을 터인데 이런 데서까지 청렴함을 더럽히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각주:5]



3. 

오늘도 곳곳에서 남을 탓하는 말과 글이 보인다. 일부의 토론엔 그럴 만한 객관성과 뒷받침이 보이나, 그저 지역, 세대, 성별, 단체간의 갈등을 일으켜 싸움 구경을 하려 하거나, 일방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화를 풀어놓는 데에 급급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일전에도 썼듯 그것은 해소가 아니라 그저 방류이며, 따라서 그런 행동을 통해 해소한 듯한 비난의 기운은 곧장 그들을 다시 찾아간다. 비난의 끊임없는 반복이 그들을 에워싼다.


그들은 아마도 꽃꽂이를 즐기고, 일주일에 한 번은 종교행사에 참여하며, 책을 많이 읽고, 아침마다 조깅을 할 것이다. 주말이면 산에 오르고, 혼자 사는 삶을 택했으며, 영적인 무신론자일 것이다. 특정한 운동을 즐기고, 시골에서 은거하며, 가정을 꾸리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그런 것들은 그 사람의 인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어떤 일과 취미가 우리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길 바라지만 그런 증거는 찾기 어려우며, 찾았다 하더라도 쉽게 반증된다. 검도를 하며 마음 수양을, 낚시를 하며 기다리는 인내를, 별을 바라보며 인간의 유한성을, 산에 오르며 자연의 넓은 품을 배운다고 말하지만, 그 주장과 동시에 스스로의 아집을 내보이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직업별로 나눈 성범죄 순위에서 사람의 마음을 돌본다는 종교인이 1위에, 사람의 신체를 돌본다는 의사가 2위에, 인류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 예술가가 3위에 오른 것[각주:6]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인품이 훌륭한 자본가가 있는 반면, 포악한 종교인도 있다. 그들의 전문지식, 그들의 취미, 그들의 예와 법도, 논리정연한 생각은 그들의 마음가짐과 행복을 결정짓지 못한다. 우리의 각박함은 아이들이 수염을 당기고 책에 오줌을 누어도 화내지 않았던 황희 정승과 죄를 짓지 않은 자만이 돌을 던지라 했던 예수 그리스도도 거부하기 때문이다. 



4.

옛 성인과 현자들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결국 하나였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엄격함이 아니라 아량과 어짐, 즉 사랑만이 우리의 삶을 칭송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좋고 선하다 믿는 애기의 화신, 분노하는 수많은 우리 범인들에게 이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1. 출전: 사마천 <사기열전> 중 골계열전 제66 [본문으로]
  2. 로베르트 무질은 이 세 번째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꼬았다: "정신분석의 무오류성을 믿지 않는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데는 당연히 다시 정신분석적인 성질의 원인이 있음을 당장에 증명해보일 수 있음을 알았을 때 무척 기뻤다." <생전유고> 135쪽 (워크룸 2007) [본문으로]
  3. 출전: 정약욕 <목민심서> 율기 6조 제2조 청심 [본문으로]
  4. 출전: 정약욕 <목민심서> 애민 6조 제6조 구재 [본문으로]
  5. 출전: 서거정 <필원잡기> 제1권 ④ [본문으로]
  6. 참고자료: 노도현 기자, 경향신문 2016년 9월 19일자 보도(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9252151565&code=94020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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