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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어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6. 6. 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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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우리가 의젓한 한 사람의 성인으로써 결혼을 한다는 놀라운 착각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오랜 학창 시절처럼 부모님에게 의지하던 청소년이 아니라 이제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지성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결혼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를 단다. 적어도 결혼을 한 직후엔 그런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스스로를 완성해 간다는 관점에서 그런 믿음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믿음은 거의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데,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그 생각이 무척 빈번하게 자신이 아닌 상대방, 즉 남편이나 아내를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람직해 보이던 관점이 타인을 재는 커다란 잣대로 작용해 버리고, 그리하여 부부가 마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한쌍인 것처럼 행동하도록 강요한다. 서로 해야 할 일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자기가 희생한 만큼 의지하며, 사랑을 준 만큼 돌려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다. 그것이 어른스러운 것이며 결혼한 사람의 책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경우, 즉 자신의 희생과 부담만이 도드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경우, 사랑이라 믿었던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만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되돌아 보면 부부의 이성적 태도와 책임을 강조하는 건 주로 남성들의 태도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른이 지녀야할 어떤 태도를 강조하고 그에 대한 강박을 지니는 건 대체로 남성들의 몫이었는데, 그런 자세 덕분에 자신들'만'의 당위성을 발달시킬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삶에서 필수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곤경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곤경이란 젊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세월에 대한 공포다. 직장에서의 은퇴, 육체의 쇠락, 질병의 엄습, 믿었던 관계의 단절, 갑작스러운 고독. 자신이 그토록 강조해 왔던 힘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만 이제 와서 그것을 입밖에 내놓을 수가 없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이 믿었던 대로 스스로 어른스럽게 헤쳐나가려고 해보지만 좌절과 공포가 그를 가로막는다. 그제서야 가족에게 의지해보려 하지만 가족은 그런 그를 염치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렇게 남자는 젊어서는 독재자처럼 군림했다가 늙어서는 외로움과 무기력에 지쳐간다. 그때까지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 채로.


우리들이 여전히 '아빠'보다는 '엄마'에게서 위안을 얻는 것은 그러한 차이 때문일 것이다. 어떤 잘못이 벌어졌을 때 남성들, 아빠들은 우선 훈육하려 하지만 여성들, 엄마들은 먼저 동조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성들이 볼 때 여성들의 그러한 태도는 나약하고 비겁해 보인다. 어떤 사건을 중립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저 한쪽의 이익에만  빠져 있는 듯하다. 남성들의 견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더 강해지라고, 울지 말고 그 시간에 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독려하는 것이 어떻게 잘못된 일일까?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특히 남성들이 빠져있는 문제는 우리가 한 사람의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써 결혼한다는 착각이다.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본성은 나약하다. 우리는 결국 세월 앞에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존재다. 서서히 건강을 잃고 자신감을 잃어 간다. 낙천적 희망은 젊은 시절의 그것처럼 결코 영속할 수 없기에 과학과 상업이 우리에게 보장한 행복이 허구라는 것이 드러날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어린아이와 같은 유약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다. 우리는 독립적으로 서있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기 위해 결혼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무책임한 모습이 아니라 서로의 진실을, 인류의 본성을 인정하는 길이다. 우리가 결국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아프고 부끄러운 고백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잘못을 질책한 뒤 그걸 바로잡기 위한 방법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아픔을 그대로 껴안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게으름마저 사랑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건 게으름에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나태 안에 영원히 머무르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항상 올바르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인지를 깨닫게 될 먼 미래를 위한 것이며, 그런 오만한 주장이 결국은 자기 경멸과 다름 없음을 깨닫게 될 그때를 위한 것이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사람을 옆에 방치한 채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 멀리 성모 마리아와 관음보살을 찾아야만 한다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는 완벽한 왕자, 멋진 공주와 결혼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크고 훌륭해 보이지만 실은 한없이 작고 연약한 한 사람과 인연을 맺을 뿐이다. 당신의 연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표현되는 천사가 아니며, 오히려 완벽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하는 대가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헛된 야심과 자부심에 빠져 있는지를 증명할 뿐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부드럽게 말하자. 비록 우리의 남편과 아내가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실수를 연발하며, 하나만 알고 온갖 잘난 체를 하는 데다가 여전히 헛된 야심과 자부심에 빠져 자신의 건장함과 명민함이 영원할 거라 믿고 있더라도......


바로 그런 너를 위해 "내가 여기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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