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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무엇이 잘못되었나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6. 5. 5.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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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은 몇 번의 이사를 한 적이 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찾아간 그 집에선 특이한 냄새가 났다. 난 다소 거북한 그 냄새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어른들은 그게 새집에서 응당 나는 당연한 냄새라고 알려주었다. 그 뒤 그 냄새는 내게 새것에 대한 향수가 되었고, 어디에서건 그 냄새가 나면 새것이라며 좋아하곤 했다. 그 자극적인 냄새가 건축자재나 접착제에 포함되어 있는 발암물질, 벤젠·클로로폼·아세톤·폼알데하이드 등에서 풍기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내가 커가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그토록 자신만만해하던 어른들의 지식이란 게 사실상 맹목적 암기에 기반하고 있어서, 몇 개의 질문만 더 해도 내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철학, 도덕, 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과학만이 지녔다던 위대한 논증과 반증의 권위가 이미 땅에 떨어졌다는 걸 학습하게 되면서, 난 지성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단 몇 번의 사례 연구와 대표성을 띨 수 없는 자료 수집, 소수 결과의 손쉬운 폐기---이런 행태에 기반한 '과학적' 주장들을 난 더 이상 신뢰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내게 알려줬던 상식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게 드러나면 날수록 내 견해는 단단해져 갔다.


그런 이유로 난 애초에 화학제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떤 화학제품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다는 이유로, 혹은 대기업이 광고하고 있다는 이유로 별 의심 없이 사용했다. 하지만 난 도무지 화학제품 제조사들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과거의 경험이 그러했거니와, 기업이라는 것의 속성이 본디 눈앞의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지, 소비자들의 향후 건강까지 챙기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기업에게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하고 알려주면, 그들은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대신 '저곳'에 버리는 행태를 보이곤 했다. 그들이 내부의 양심과 깊은 생각에 귀 기울였다면 그런 식의 발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수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기 좋을 대로의 해석을 쉽게 가하곤 했다.


따라서 화학제품 설명서에 들어 있곤 하는 다음의 문구, "인체에는 무해하나 먹지 마시오"와 같은 아이러니한 문구들을 난 곱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 "인체에 무해하나 먹지 말라"는 뜻은, 


1. 아직까지 인체에 독성을 띠지는 않았으나 향후엔 알 수 없다는 뜻일 수 있었고

2. 피부에 접촉하는 선에선 무해하나 몸속으로 들어갔을 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는 뜻일 수 있었으며, 

3. 소량 섭취로는 무해하나 일정 용량 섭취 시 독성이 발생한다는 뜻일 수 있었고,

4. (여성) 인체에는 무해하나 (남성이나 유아의) 인체에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인체에는 무해하나 먹지 말라"는 것은 위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아주 불명확한 문장이었다. 결과적으로 명확한 것은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고, 그건 그 제품이 뭔가 예측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괜한 의심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안전하다고 했던 화학제들이 손바닥 뒤집듯 너무나 쉽게 위험한 것으로 판명되곤 했다. 무해하다고 했던 가습기 살균제, 립스팁, 바디로션, 방향제, 베이비 파우더 속의 많은 성분들이 내분비계를 교란하고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크림 하나만을 놓고 보자. 크림은 제품 자체의 PH 유지와 변질 방지, 곰팡이 생성 방지, 피부의 항노화 방지, 향기 유지 등을 위해 각종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부틸히드록시아니솔, 하이단토인, 디에칠프탈레이트, 파라벤, 레티닐팔미테이트와 같이 유해성 논란이 있어서 외국에선 이미 사용 금지되었거나 함유량 기준을 대폭 낮춘 성분들이 국내 시장에선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그리하여 난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햇볕에 아주 오래 노출되는 경우가 아니면 선크림도 잘 바르지 않고, 바디로션 같은 건 사용해 본 적도 없으며, 평상시 세제를 잘 쓰지도 않는다. 대신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쓰며, 얼굴이 어느 정도 타는 것을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 피부가 건조해지는 걸 못 견뎌하지 않으며 평소에 건강하게 땀을 흘리려고 노력하고, 세제를 잘 쓰지 않는 대신 음식물이 묻은 그릇은 되도록 빠르게 씻고 기름기는 깨끗한 종이로 닦아낸다. 각종 고양이 용품이나 물생활 용품 중에서도 오직 내 편의를 위한 화학제품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화학제품을 쓰지 않아서 발생하게 되는 스스로의 불편함을 감내하려는 태도이다.


사람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따라서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며 감내했던 모든 노력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명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부작용이 있는 물질이더라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더 윤택한 삶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 결국 명확히 어떤 선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생각하려는 노력을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직관이 어떤 현상에 거북함을 느낀다면 그 느낌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어떤 의구심이 어느 정도 확신으로 다가선다면, 그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함을 참아낼 줄 아는 인내심을 지녀야 한다. 탈취제가 옷에 스며든 안 좋은 냄새를 쉽게 없애 주지만 그 성분이 상당히 의심스럽다면, 간편한 탈취제 대신 불편한 어떤 행동(평소에 옷 관리에 신경 쓰기, 실외에서 옷 털어주기, 잘 세탁한 후 햇볕에 널어두기, 어느 정도의 일상적 냄새는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기 등)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관심이 더 있다면, 기업에서 애초에 인체에 유해한 제품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개개인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의 내가 그 당시 어른들의 말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면,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생각해 본 뒤 현재의 어린이들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간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정체될 것이다. 그런 노력은 단순히 어린이들에게 '좋은 것은 좋은 것'이라는 맹목적 가르침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어린이들의 의문에 같이 고민해 보려는 시도에서 출발할 수 있다. 그런 고민하는 자세는 평소에 연습하지 않으면 결코 단번에 나타나지 않는다. 진짜 어른이 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진짜 어른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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