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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과정의 길, 포시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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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험해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작년 가을에 이탈리아 포시타노의 해변가에서 맛보았던 레몬 셔벗이 그런 경우다. 웨이터가 식탁에 내려 놓은 셔벗은 커다란 레몬 껍질 안에 담긴 채, 역시 레몬으로 만든 뚜껑으로 덮혀 있었다. 이 셔벗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 실제 맛을 보기 전엔 그 맛을 알 수 없었다. 맛을 본 뒤에야 그 주문이 성공적이었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항상 성공적이지만은 않다. 그 다음에 주문한 리몬 첼로는 반절도 마시지 못했다. 30도가 넘는 독한 알코올 농도를 난 감당할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최고의 성취인 줄 알고 달려왔는데, 뒤돌아 보니 달려온 그 길이 아름다웠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위대한 명상가들과 선지자들은 삶 자체가 그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미지한 자들은 자신의 생의 끝에 다다르기 전엔 그를 깨닫지 못한다. 따라서 평범한 우리네는 그 지혜를 얻을 시기엔 너무 나이 들거나 병들어 입을 열기가 힘들기에, 혹은 굳이 말해 봐야 스스로 깨닫기 전엔 의미 없음을 알기 때문에 그 지혜를 전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에서 지혜를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여행이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여행은 굳이 생의 마지막까지 가보지 않고도, 누구에게 직접 듣지 않고도 그 길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기회를 준다. 당시 여행 목적지였던 포시타노의 아름다운 마을을 떠올려 보자.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 아름다운 마을 자체가 아니라 포시타노의 바닷가를 향해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던 우리 발걸음과 분위기였다. 우리는 멀리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포시타노 마을의 색채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보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마을 건물들의 평범한 채색을 배경으로 소박하고 수수한 즐거움을 누렸다. 그 즐거움은 우리의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것이기도 했으며, 각자 풍기는 것이 모여 이루어진 전체의 것이기도 했다. 여행객들은 줄지어 내려오며 대열을 이루었고, 때로는 사진을 찍기 위해 그 대열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누구의 눈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주변 이목이 두려워 버스의 벨조차도 잘 누르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멈춰 서서 자신의 원하는 표정으로 피사체가 되길 주저하지 않으리라. 홀로 여행하는 자들도 이 길 위에서는 충만함을 느끼니, 그 길을 걷던 신혼의 우리 두 사람이 어떠했을지는 분명하다.


그리스도교 세계를 밀어내려했던 칼리프의 북쪽 기지이자,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하여 비잔티움으로 가는 상인들의 기착지였던 이 길 위에서 우리는 과정의 향그러움을 매만졌다. 그 감촉은 레몬 셔벗처럼 상큼했고, 때로는 리몬 첼로처럼 타들어갔다. 어떤 건 나쁜 선택이었다고 서로를 질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자. 포시타노로 걸어가는 그 길이 무척 아름답지는 않았음을, 수시로 자동차가 지나가던 그 좁은 골목이 때때론 발자국으로 더럽혀져 있었음을. 그리하여 목적지라 생각했던 포시타노 역시 목적지가 아닌 과정 위에 놓여 있었음을 어렴풋이 알아차려 갔다.

 

 

 

포시타노의 해변에서.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살레르노현, 2015.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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