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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인공지능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6. 3. 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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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다가오면서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끼칠 영향에 대한 기사 또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기사나 방송 프로그램들의 특징은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수십 년 내에 다가올 어떤 것으로, 우리들의 일자리를 상당수 빼앗고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보도는 새삼스럽지 않다. 인공지능이 크게 회자되던 1960년대에도, 잠깐의 침체기를 지난 80년대나 그 이후의 시기에도 인공지능은 대개 그런 식으로 보도되어 왔다. 내가 어렸을 때는 2020년 정도 시기가 되면 달과 화성에 기지를 짓고 그곳에서 인류가 살고 있을 거라는 식의 보도가 많았다. 언론뿐만 아니라 과학 잡지나 전문적인 과학 서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에 바라보던 인공지능의 미래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제 바둑 두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와 대결을 한다니, 알파고가 설사 이번에 패한다고 해도 1년쯤 뒤엔 능히 바둑에서 인간을 무찌를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승패를 떠나 과거의 예측이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만일 체스나 바둑 두는 소프트웨어를 인공지능이라 칭한다면, 실상 우리는 수많은 인공지능 프로그램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아주 쉽게는 컴퓨터 게임에서 마주할 수 있고, 우리가 자주 가는 웹 사이트를 알아서 보여주는 웹 브라우져에서도 볼 수 있으며, 자동으로 초점을 잡는 카메라 렌즈나 자동차 네비게이션에서도 인공지능을 발견할 수 있다.

 

컴퓨터가 가장 잘 하는 일 중의 하나는 대입하여 변환하는 능력이다. A를 1로 바꾸고 B를 2로 바꾸라고 하면 컴퓨터는 이를 아주 잘 수행한다. 문법이 비슷한 몇몇 유사한 언어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번역기가 그러한 경우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바꾸기만 할 수 있을 뿐, 바꾼 결과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바꾸어야 하는 원리를 인간이 미리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알파고는 지금 당장 어떤 자리에 바둑돌을 두는 것이 최선인지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그 이유 역시 인간만이 알고 있을 뿐 알파고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규칙 자체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규칙을 따르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잘하는 컴퓨터가 규칙으로 이루어진 것들, 즉 체스나 바둑에서 인간을 앞지르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용량이 커지고 처리속도가 더 빨리질수록 그 일은 가까워졌다. 따라서 알파고와 인간 바둑 기사의 대결은 생각지도 못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며, 새삼스럽지도 않고, 그런 일로 인해 인공지능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성큼 다가오게 된 것도 아니다. 어떤 이벤트로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갖기 어렵다. 자동차 네비게이션이 그 누구보다 길찾기를 잘 하던 사람보다 더 길을 잘 찾게 됐다고 해서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패했다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알파고의 예견된 승리엔 너무 큰 의미가 따라다닌다.

 

인공지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고 이미 그 발전이 예견된 능력, 즉 무언가를 대입변환하고 검색하는 능력에서는 큰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인지 능력에서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다. 인공지능은 여전히 분필과 하얀 볼펜과 길쭉한 하얀 종이와 그와 비슷한 모양의 숫자 1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물론 특화된 방대한 데이터 입력을 통해 (마치 인간의 특정 얼굴을 인식하듯) 몇 가지 구분을 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색이 다른 분필, 길쭉한 나무 막대기를 보면 또 다시 혼동할 테고, 그럼 그에 대한 데이터를 또 넣어주어야 한다. 이런 작업은 무척 지루하며 전혀 창의적이지 못하다. 만일 새로운 형태의 볼펜이 개발되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그에 대한 데이터를 또 넣어주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인지하는 능력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그랬듯 인공지능은 여전히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분야에서만 발전하고 있다. 다른 패러다임으로 이행하지 못한 채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만 발전하고 있는 형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 <A.I.>나 <엑스 마키나>에서 나오는 그런 인공지능 로봇이 나타날 걱정은 아주 꽤 오랫동안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로봇은 몇 백년이 지나도 그 성취가 요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여전히 이 떠들썩한 행사에 동참하여 그들의 흥행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때그때의 우려와 놀라움을 반복하는 기삿거리를 내보내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년 뒤에, 또 그 1년 뒤에도 "인공지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영화적 상상을 뒤쫒으며. 그리하여 미래의 먼 후손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이루어 낸 인공지능에 대한 이 무수한 시사적 발견들과 그 우려 섞인 목소리의 과도한 진지함에 무척 놀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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