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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세계, 보통의 행복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6. 3. 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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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동화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동화는 세계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독자가 동화가 주는 표상적 이미지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것은 동화로 존재할 수 있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가 동화가 아니었다면, 왕자의 키스로 마법에서 풀려난 백설공주는 그동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를 먼저 궁금해 했을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앞에 서 있던 왕자를 껴안는 대신,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동화의 세계에 속해 있었고, 따라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마치 알에서 처음 태어난 새끼가 처음 본 생명체를 곧장 어미로 생각하듯, 꿈에서 갓 깨어난 사람이 자신이 아직도 꿈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착각하듯─왕자에게 반한다.

 

이런 동화는 현대의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많은 "슈퍼 히어로 무비"들은 현대 세계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이런 류의 영화 중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에서도 백설공주와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가 70년만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른들의 동화답게) 백설공주와는 달리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현실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층적 문제들, 즉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정체성(예를 들어 흑인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황)이 너무나도 달라졌다는 사실에 의아해하지 않는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동화라는 것은 명백했다. 16세기 사람인 노스트라다무스가 몇 백 년 뒤에 발생할 일들을 환상을 통해 보았을 때, 미래의 어떤 누군가가 그의 환상 속에서 벌어진 광경들이 무엇인지를 그의 곁에서 서술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이 본 것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환상 속에서 미래의 자동차나 로켓 혹은 우주선을 보았을 때 그 물체들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우주에서 강하하는 스페이스 셔틀을 목격한 그는 어쩌면 외계인의 침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미래에 대한 환상을 실제로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는 그걸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야 했다. <수도원의 비망록>의 여주인공, 블리문다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예언에 관심을 기울이며 믿음까지 보낸다.

 

그렇게 우리들은 여전히 동화를 좋아하고 동화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환상이 아닌) 과거에 실제 벌어졌던 사실들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예고한다. 정치인들의 약속, 상품의 욕망, 드라마의 꿈, 연인의 사랑, 자식에 대한 기대... 우리는 결코 동화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통의 행복은 자신만의 동화가 현실이 되었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어른의 세계에 발을 딛고 있다고 믿음,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동화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 주세 사라마구의 소설, <수도원의 비망록>에서 투시 능력을 지닌 여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투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땅바닥에 숨겨진 물체가 금인지 은인지 정확히 알아 맞추지 못했다. 그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함부로 추측하는 게 아니었어요. 저는 항상 금과 은을 혼동하니까요."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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