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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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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대는 또 괴로워하고 있다. 그대의 꿈은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가 말하는 사랑은 인류애였고 그대가 말하는 도움은 전인류적인 것이었으며 그대가 말하는 생의 의미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가죽 지갑이었고 그대의 목에 걸려 있는 것은 금 목걸이었으며 그대가 입고 있는 옷은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대는 오늘도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대는 휴머니스트이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은 헐벗은 자들을 위해 같이 굶주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금 먹고 있는 그 고급 음식을 배고픈 이들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못 배우고 얼굴이 까만 이들도 고급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들도 골프를 즐기고 비싼 술을 마실 수 있으며 최상위의 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도덕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어떻게 생각하면 비극적으로도 보이지만 이제 휴머니즘은 그런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찢어진 옷을 입은 채 자유나 독립을 외치는 사람들을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무도 그런 삶을 바라지 않는다. 오늘날의 휴머니스트들은 영향력있는 영화 감독이거나 성공한 예술가, 기업체의 사장,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아무도 그들의 삶을 인류의 구제로 집어 던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불린다. 그들이 내는 기부금과 그들이 영화를 만들거나 글을 쓸 때 소재로 하는 아름다운 사랑 같은 것들 때문이다.

굶주린 사람들은 더 이상 그대가 옆에서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길 원하지 않는다. 돈 만원이 그들에겐 더 절실하다. 그렇기에 그대는 여전히 휴머니스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고뇌할 필요가 없다. 아마 그대는 편안한 안락 의자에 앉은 채 커다란 TFT모니터 앞에서 영화를 보며 올해의 인물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신문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그대는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자신의 명예로운 삶에 미소짓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 현재의 휴머니즘이다. 진흙밭에서 뒹굴며 '신자유주의여, 물러가라' 라는 구호를 외쳐대는 정신나간 것처럼 보이는 대학생, 생계보장을 외치며 몸에 기름을 뿌리는 천한 출신의 일용직 노동자들에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 금빛 물결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휴머니스트이다. 냉소적이며 나르시시즘적인, 가련한 휴머니스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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