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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적 수필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12. 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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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과 다르게 동양 철학이 유독 신비주의와 맞닿아 있는 이유를 그 명확한 경험적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루뭉술(해보이는)한 서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철학이 기호논리학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과학적 논증에 힘을 쓴 반면 동양 철학은 포괄적인, 경험적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진술을 유지해 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동양 철학은 사람들의 저변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누군가가 서양 철학의 논증을 통해 무언가를 진술하는 경우를 찾아 보기란 쉽지 않다. 서양 철학은 대개 분명한 사유의 근거를 통해 진술되므로 스스로 확실하게 이해하기 전엔 뭔가 서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동양 철학은 상징적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읽고 나면 금세 뭔가 알고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여기에 사이비와 미신이 끼어들 여지가 많아진다. 동양 철학에 약간의 과학적 근거를 뒤섞어 그럴 듯한 논증을 펼치면 그것은 곧 일종의 믿음으로 변모하고, 이런 믿음은 행복이나 인생, 사랑과 같은 비슷한 종류의 개념을 설명하는 아름다운 수필의 근간이 되어 성공적인 사업을 보장해 준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나비가 번데기에서 태어나는 과정과 같다거나, 물은 결코 다투는 법이 없다는 말에 세상의 비의가 담겨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도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수많은, 이른바 '땡중'을 낳게 된다. 이런 글들의 위력이 생각보다 무척 강하다는 건 수십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살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치유, 용기, 희망, 삶... 일단 이런 키워드로 현혹한 뒤 두루뭉술하게 도[道]를 피력하는 수필집들을 난 '주술적 수필'이라고 부른다. 이런 수필들은 인류의 존재 목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한 인간과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따라서 주술적 수필은 '매문'을 목적으로 하는 많은 글쟁이들의 표적이 되어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이들은 스스로의 지난한 경험을 바탕으로 큰 깨우침을 얻은 후에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보지도 못한 것들을 상상이나 과거 지식의 수많은 편집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가르친다. 이런 글들의 홍수는 사유해 볼 만한 좋은 수필조차도 주술적 수필에 치여 빛을 잃게 만든다.

 

사실 그 두루뭉술함에 있어서는 예술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이 그런 의혹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관찰자에게 자신의 한 가지 주관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의 해석은 관찰자에게 달렸다. 그러나 주술적 수필은 독자에게 자신의 진술에 진리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혹은 진리 그 자체라고 설파한다.

 

이때 "잘난 체하며 진실을 말하지 마라"고 했던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조언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덧붙여 보면 다음과 같다. "갑부에게 위대함을 돈과 결부시키지 말라고 하면, 그는 당신 얼굴을 때릴 것이다. 어떤 여자에게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추하다고 말하면, 그녀가 천사일지라도 당신에게 악마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판관에게 유다가 누구인지 혼동 하지 말라고 하고, 시집 안 간 규수에게 선[善]은 선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모두 당신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진실만 말하면 친척도 적이 되고, 친구도 사라지고, 점잖은 사람도 화를 내는 법이다. 진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당신이 터득한 진리를 숨기고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홀로 바보가 되지 말고 그들과 함께 지혜롭게 살아가라.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며 지혜다." (<나를 찾는 즐거움>,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70쪽)

 

주술적 수필이 성공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안착하고 또 그 지은이들이 명사로 거듭나는 이유는 그와 같다. 그들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조언을 잘 따르고 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기분 나쁜 상태의 사람에게 던져버리면 화만 돋우게 된다. 옳은 말을 듣고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무리 지적을 해보아도 돌아올 반응은 한결 같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쟁이에게 재치 있다고 칭찬한다면 그 거짓말쟁이는 당신을 추켜세울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지혜로운(혹은 지혜로운 척하는) 방법이 필요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대중을 좋은 말로 기만하여 칭찬을 받고, 어떤 이들은 그에 반발하여 직언을 하다가 소수자로 남고, 또 소수의 어떤 이들은 그 사이에서 현명한 자세를 취한다. 장정일 작가나 박선우 감독,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처럼 직언을 하거나 냉소적인 시선을 유지하거나 혹은 일부러 비주류로 남는 선택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주술적 수필처럼 적당히 귀에 듣기 좋은 말을 늘어 놓아 주류에 편승하는 선택을 하기도 쉽지만은 않다. 그 사이에서 지혜롭게 남기는 더욱 어렵다. 때론 그 지혜마저도 박쥐나 쥐의 무리처럼 교묘하고 음흉하다며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마주한 우선적인 최선의 선택이란 최악의 것부터 하나하나 지워 나가는 것, 즉 주술적 수필에서 멀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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