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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은 누가 만들었나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5. 11. 4.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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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계속 지적만 하는 거야? 지금까지 한 소리가 전부 내 잘못 이야기하는 거잖아. 난 이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

 

위의 문장은 극한 감정 대립으로 치닫기 시작한 부부나 부모와 자식간의 다툼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위의 화자는 자신이 지적받은 사항이 정당한지를 논박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지적이 계속되는 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감정적으로는 용인될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주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논리와 감정에 도덕적 신뢰감까지 더하여 상대방을 설득하겠지만 상황이 언제나 그렇게 여의치는 않다. 부부나 자식이나 친구 같은 관계라면 로고스에 파토스와 에토스까지 더하는 신중하고도 예의바른 태도로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나, 이성적 판단을 근거로 해야 할 토론회에서 감정을 무기로 삼는다면 그것은 감정 호소의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위와 비슷한 감정 호소가 정치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며칠 전에 열린 '역사 바로 세우기' 포럼에서 역사뿐만 아니라 경제, 문학, 윤리, 사회 교과서 모두 이제 올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찬동하고 있는 '자유경제원'이 문학 교과서 또한 왜곡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이때 근거로 든 것이 최인훈의 <광장>이나 신경림의 <농무>였다. 이런 문학소설이 남한을 '게으름과 방탕한 자유가 있는 곳'이라고 묘사하거나 '70년대 고도 성장 이면에 황폐화된 농촌'을 그려서 조국을 못나고 불행한 곳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유경제원은 이들 소설 외에도 교과서에 실린 7개의 소설을 더 지적했는데, 최근 작품으로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쟁 덕분에 지금의 풍요로움이 있는 것인데, 이 소설은 경쟁을 지나치게 비판만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왜 계속 지적만 하는 거야? 잘한 것도 있는데! 자꾸 지적만 하니까 청소년들이 헬조선, 헬조선 그렇잖아!> 아마 이들은 비판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비판의 목적은 자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반성과 그를 통한 발전에 있다. 

 

<왜 우리 아이 혼을 내요, 애 기죽으면 어떡하라고!>라고 말하는 부모의 이기심이 요즘 '맘충'이라는 모욕적 단어로 대변되고 있는데, 만일 그 '혼'이 공갈이나 윽박을 동반했다면 부모의 그 태도를 꼭 이기심의 발로라고는 할 수는 없다. 설사 아이가 잘못을 했더라도, 잘못에 대한 설명을 순수한 논리로 접근하지 않은 채 폭압적 감정을 동반했다면 아이의 마음은 잘못과 관계 없이 위축될 수 있고 따라서 그것은 잘못된 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 제기된 문학소설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미 문학성을 인정 받았으며 앞으로도 우리 소설사에 길이 남을 이 소설들은 우리 사회를 자조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게 아니라 건전한 비판을 위해 쓰인 것이다. 그런데도 비난을 받아 기분이 상했고 언짢으며 조국이 싫어졌고, 그렇기 때문에 저 소설들은 교과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감정 호소의 오류이며 문학의 본질을 외면하는 일이다. 

 

최근의 이런 현상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금서로 지정했던 과거의 일을 떠오르게 한다. 아마 이들은 홍길동전이나 양반전 또한 불편한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 고전 소설들의 비판 대상이 조선 시대의 집권층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를 통해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면, 그들은 이 소설들이 <헬조선> 현상을 만든 원조격 소설이므로 교과서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율도국을 세운 홍길동은 시민 불복종과 내란을 선동하는 인물이며, 양반을 도적으로 비유한 서민부자는 집권층을 불신하는 불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교과서에 실은 만한 소설은 결국 교육소설, 즉 주인공이 사회에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시민이자 성실한 노동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것들만 남게 될 것이다. 문학뿐이겠는가. 어쩌면 그들은 '한국의 바그너'를 발굴해 낼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로엔그린을 듣다가 '바로 이거야!' 하며 무릎을 탁 친 과거의 그날처럼 말이다. 그 후 정부가 말하는 '올바른' 예술이란 바로 그 관점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이쯤되면 정말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희망이 안 보이는 헬조선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비관적인 세계관을 심은 문학소설인가 아니면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하는 역사 교과서인가? 아니면 문학과 역사를 '올바르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떤 이들인가? 역사 편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븐 할둔이 그의 위대한 고전이자 인류 공통의 소중한 유산인 <역사서설(무캇디마)>에 남긴 다음의 말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학은 우리에게 과거 여러 민족의 속성과 예언자들의 언행 그리고 왕조의 군주가 처했던 다양한 상황을 알려준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려면 많은 자료와 다양한 지식, 예리한 시각과 철저한 조심성이 필요하다." 그들은 <왜 계속 지적만 하는 거야?> 하며 불퉁거리기 전에 문학과 역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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