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텍스트 사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인간의 가치와 가치평가"라는 목표를 가지고 진행된 한 학술회의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 강연에서 "해석과 초해석"이라는 주제를 제시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이 강연회의 목표인 "인간의 가치와 가치평가"와 에코가 제시한 "해석과 초해석" 사이의 관계이다. 문학 작품들을 '해석'하는 것과 인간의 '가치'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일까? 이 책의 서문이나 각 강연자의 발표엔 이것에 대한 뚜렷한 설명이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바로 인간에 대한 해석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텍스트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인간이 만들어 낸 텍스트의 해석은 결국 그 인간에 대한 해석(그 해석이 필요하든 불필요하든 간에)과 연결되고, 따라서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에 대한 토론은 인간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것과도 직간접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독자층을 단순히 문학 비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텍스트라는 방대한 구조의 해석을 논평하려는 시도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도와 이어질 수 있으므로,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현상에 관심있는 사람들 역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토론에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강론은 총 6개인데, 3개는 에코의 것이고, 나머지 세 개는 각각 로티, 컬러, 브루크로즈의 것이다. 이 강론들을 주장하는 바에 따라 크게 나누어 보면, 4개의 강론(에코와 브루크로즈)은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1개의 강론(로티)는 에코에 대한 반대 의견, 1개의 강론(컬러)은 에코와 로티를 모두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단 하나의 반대입장이자 탈구조주의 비평을 취하고 있는 로티의 견해였다. <언어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혹은 <텍스트가 어떻게 작용하는가>하는 질문을 사실상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 로티의 입장은, 텍스트에서 자꾸만 무엇인가를 밝혀내고자 하는 의도와 해석의 범람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흥미로운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논거의 내용 자체를 떠나 대단하게 느껴졌는데, 왜냐하면 그의 주장은 신발 가게에 들어가서 신발을 신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는 이 강론에서 많은 반발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그의 주장은 다른 강론자들의 의견보다도 더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컬러는 자신의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비평 중 아주 흥미로운 많은 유형들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잊고 있는가를,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당연시하고 있는가를 묻는다."(159쪽) 바로 로티는 그 "당연시하고 있는" 것에 의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현대 비평의 최신 경향이 아무리 그러하다고 해도, 어쨌든 대부분의 작가나 독자나 비평가는 작가의 의도나 텍스트의 의도를 밝혀내는 것이, 혹은 밝힐 수 있도록 암시해주는 것이 올바른 해석의 방법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독자가 텍스트를 자신의 방식대로 무한정 해석하는 것에 좋은 시선을 보낼 수는 없다. 작가의 의도가 존재하는 한, 그 의도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걸 무시할 수는 없으며 그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기돼지 삼형제"의 작가가 왜 하필 '삼'형제로 구성을 했는지, 왜 하필 피부가 '하얀' 돼지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는지 그 의도를 분석할 수 있으며 그럴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기돼지 삼형제"의 작가가 그 이야기를 쓴 본 의도가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작가가 피부가 하얀 돼지를 선한 주인공으로 삼고 피부가 검은 늑대를 악당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해석하고 이용한다면 작가는 그 해석이 부당하다고 주장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비평가는 그 해석을 초해석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로티의 주장에 계속 눈길이 가는 이유는 컬러가 에코의 '초해석'에 대한 생각을 반박하며 내세웠던 주장 때문이다. 즉, 컬러는 "에코가 <초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상적인 대화에서는 불필요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대화의 기능을 숙고하게끔 해주는 질문들을 던지는 연습일 수 있다"(157쪽)라고 했는데, 난 로티의 주장이 바로 그 연습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질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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