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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을 실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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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 자신의 슬픔을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자신에게 무신경한 주변 사람들을 보게 될 때의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 그런 무신경한 태도를 보일 때의 좌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고, 또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한다. 일이 너무 많아서,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니라서, 씻는 중이라서, 어른들과 함께 있어서, 식사 중이라서, 너무 잠이 와서 연락을 하지 못했고 받지 못했으며 또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런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면 그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다. 단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가 두렵거나,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고민을 털어낼 대상이 필요하기에, 혹은 성욕의 해소 이유로 아직 자신의 곁에 머무를 뿐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서로 열렬히 사랑을 했던 그런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기조차도 소모적이고 이기적인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안톤 체호프의 「베짱이」에 나오는 올가를 보자. 그녀는 극장에 늦을까 걱정이 되어 다른 사람의 말에는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전해주는 기쁜 소식에도 의식적인 감탄사만 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간과 열정을 쏟아 이루어낸 학문적·예술적 대가를 비싼 음식과 허영에 찬 화려한 옷, 그리고 한 번 쓰고 버릴 장난감으로 바꾸어 버리는 게 올가가 말하는 사랑이었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고 자신의 슬픔만을 이해해달라고 요청하던 시기가 그들이 결혼 생활을 채웠다. 그러다가 한쪽이 지쳐 사랑을 끝내려 하면 다시 말하는 것이다.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난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한 번의 포옹과 입맞춤. 놀랍게도 우리는 그것만으로 상대가 했던 모든 잘못을 용서해버린다. 그래서 이 끝없는 소비적인─자신은 사랑이라 생각하는─허영은 끝없이 지속된다.

그래서, 이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슬픔과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슬픔에 대해 얘기하면 “또 그 소리야”, 혹은 “나도 힘든데 자꾸 그런 얘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야” 하는 대답을 들을 것이며, 기쁨에 대해 얘기하면 “당신 일에 바빠서 나 같은 건 눈에도 안 들어오는군요.”, 혹은 “그래서 돈을 얼마나 더 벌게 되는 건데요?”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착한 사람이라면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오늘 저녁엔 무얼 먹을까’, 혹은 ‘피곤한데 그만 자면 안되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자신의 일에 관해선 입을 다무는 것이 좋다. 그럼 적어도 그는 당신을 편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마음껏 자기식대로 살다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되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당신의 고결한 사랑을─당신이 떠나려 할 때─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과적으로 당신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은 잠이 든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젯밤 갑자기 슬픈 눈을 한 채 당신의 발 밑에 죄지은 얼굴을 했던 그의 얼굴을 본다. 그의 처연한 얼굴을 본 당신은 순간 연민의 마음이 들어 그를 포옹했지만, 사실 당신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당신에게 죄를 지었다는 걸 순간적으로 나마 깨달았고, 단지 그 스스로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억누르지 못해 당신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당신은 용서하는 것이다. 그 사랑,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사랑을 지속시켜 나간다.

그래서, 그래서 당신은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 그에게 당신의 고민을, 기쁨을, 슬픔을 말하려는 순간, 그는 당신이 자신에게 집착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신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그토록 괴롭고 잘 풀리지 않는 것을─어쩌면 그 모두를─당신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신에게 듣는 귀만을 요청해야 한다. 마치 살리에르가 그랬던 것처럼. 위대한 곡을 알아듣는 귀만을 허락받았던 그처럼. 당신이 그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해 입을 연다면, 그때부터는 당신조차도 그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자신의 고통엔 입을 다물자. 날 사랑하지 않는 그가 날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랑의 순결한 순교자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도록.

 

 

200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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