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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관하여 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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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면 당신은 나를 잊겠지. 나도 당신을 잊을지 몰라. 하지만 그건 비극이 아니야. 너와 난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을 잊어 왔으니까. 그건 비극도, 배신도 아니야. 그저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일 뿐.

영화 『봄 여름 가을 경울 그리고 봄』에서처럼, 삶에서 집착은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고 그리고 다시 나타나 생 속에서 반복되겠지. 하지만 그래서 그것 역시 비극은 아니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 이제 더 이상은 비극이 아니야. "3년 뒤면 너도 나도 서로를 잊겠지.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그 날이 오면,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허리에 매달아 놓은 돌덩이를 가볍게 잘라 버릴 수 있게 될 거니까. 그렇게 우리가 인정하게 되면ㅡ이제 그건 더 이상 비극이 아니야. 우리는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수초들과 이야기기 하기도 하고, 물보라를 뿜어 내며 자맥질 하기도 할 테니까. 가끔 생의 그물에 걸리게 되기라도 하면, 작은 지느러미를 있는 힘껏 움직여 탈출한 뒤에 자신이 미처 모르고 있던 아가미의 힘찬 숨결, 자신의 생에 대한 열망에 깜짝 놀라게 될 테니까. 그리고 어느 날, 흘러가는 강 위에 힘없이 떠있게 되겠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는 말했지. 네가 사라지면 버려진 조개처럼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만 그것도 괜찮다고. 난 왜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물론 지금도 사랑이란 중요하다고 생각해. 변화 없는 규칙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  반복적으로 순화하는 계절의 변화를 끊을 수 있는 것, 그건 여전히 사랑뿐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제는 그게 없다고 죽지는 않아. 애써 찾지도 않아. 없더라도 세상은 살 만한 것이었으니까. 사랑이 없다면, 혹은 네가 없다면 나는 삶에서 더 숭고한 의미를 찾지는 못하겠지만, 숭고한 삶만이 살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니까.

조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호랑이를 보러 가고 싶었다고 말했지. 호랑이는 무서운 존재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무섭지 않을 테니. 하지만 조제가 사랑했던 사람, 그러니까 츠네오와 헤어지고 난 후에 오히려 조제는 삶에 더욱 적극적이게 되었어.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더 이상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은 채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세상을 누벼. 나 역시 세상을 호랑이 같다고 생각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야만 헤쳐 나갈 수 있는 곳. 하지만 어떤 일 후에 변화가 생겨났지. 너는 어떠니. 너는 조제가 아니니?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조제가 말했던 것처럼, 3년 뒤면 너도 나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를 잊게 되겠지. 이곳도 사라지고 이 글들도 사라지겠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과 즐거운 저녁을 보내게 될 거야. 그래서 깊은 해저에서, 자신 말고는 다른 그 누구도 의식할 수가 없는 그런 날이 오겠지. 그럼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몰라.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 뿐이야." 하지만 조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게 부디 체념이 아닌 승화이기를. 김병호 시인의 시에서 처럼, 때묻지 않은 아이의 순수함을 보며  "한 때 내 죄가 저리 가벼운 때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진 몰라도, 결국 우린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을 테니까.

그러니 더 미소 지으며 살아줘. 더 아름답게, 더 아름답게.

 

 

200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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