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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으로 바르게 사회 생활을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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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다. '느리게 살기', '천천히 사는 인생'과 같은 주제들이 많은 곳에서 열띤 호응을 얻었던 과거가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거의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난 오늘도 한 사람을 만나 그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들어야 했다. 누구나 하는 그런 이야기였기에 나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난 윤리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길 원했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때때로 감탄사를 섞어가기도 하며) 그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 척했다. 그런데 그는 점차 나의 흥미를 끄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부서가 일을 게을리한다고 험담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자신의 업무량에 대한 호소와 타인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의 표시는 무척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에 섞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한 사람이 자신의 바쁘고 힘든 일상에 대해 얘기할 때, 그 뒤에 타인 혹은 다른 부서에 대한 험담이 오지 않은 경우란 무척이나 드문 일인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떠맡은 과중한 업무에 대해서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재촉하거나 떠넘겨보면, 결국 그는 자신의 속에 담아두고 있던 타인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다른 부서에 대한 험담을 시작한 건 사실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이란─마치 야한 동영상을 서로 건네받으며 모종의 미소를 머금는 사람들처럼─그의 말에 동조를 하며 함께 그 부서를 험담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상 겪는 이 일들이 갑작스럽게 특별히 다가온 것은 그전엔 확연히 느끼지 못했던 메시지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쁘기라도 한 것처럼 열심히 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헝클어진 머리와 충혈된 눈을 한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키보드 옆에는 커피가 늘어붙은 컵들이 여기저기에 엉켜져 있고 흰 서류 뭉치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누구라도 그가 과중한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취미생활 같은 건 할 틈도 없으며 시간이 나면 잠을 청하기 바쁘다. 굳이 누군가에게 '나는 요즘 너무 바빠'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가 한숨을 푹 쉬며 담배를 물고 문 밖으로 나가면 얼른 따라가서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니 말이다.

그런데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정은 다르다. 그들은 언제나 깔끔한 용모를 한 채 책상에 앉아있다. 책상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고 책은 가지런하게 꽂혀 있다. 항상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아 '얼마나 일이 편하면 얼굴이 생글생글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대체 얼마나 일거리가 없는지, 옆자리의 다른 사람이 어떤 일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으면 자청해서 그 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게다가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요즘 바빠?"라고 묻는 걸 꺼려하며, 하는 수 없이 대답을 해야 되는 경우엔 다음과 같은 식으로 대답하여 사람들의 질투와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냥 그렇죠 뭐."

어찌하여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대개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기적이기거나 적어도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회식에서 술도 잘 마시지 않으며 마시더라도 자기 취미 생활을 이유로 곧잘 집에 가버린다. 게다가 옷이나 화장과 같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써 업무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걸 보면 도대체 일을 하러 오는 건지, 연애를 하러 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또한 그들은 말한다. "책상을 보세요. 얼마나 책을 안 보는지 항상 책이 같은 자리에 꽂혀 있어요. 도대체 일은 머릿속으로 한답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들은 책과 A4 용지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자신의 책상을 잠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기분 나쁘게 하는 건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은 항상 정시에 퇴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누구는 칼퇴근하기 싫어서 안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는 분에 넘치는지 한참을 씩씩거리더니 커피를 마치 물이라도 마시듯 들이켰다. "세상은 불공평해요. 누구는 편하게 직장생활하고, 누구는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도 않고. 도대체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렇듯,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공평한 처사와 그로 인한 노골적인 감정 손상은 일시적인 분위기를 넘어 사회의 분열을 야기하고 있었다. 땀으로 찌든 머릿결과 아무렇게나 걸친 외투, 반쯤은 풀린 넥타이를 한 사내가 서류 뭉치들로 헝클어진 자신의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빙긋 웃으며 정시에 퇴근을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대개 그들의 업무가 오후 5시부터 급작스럽게 바빠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상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늦은 퇴근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업무 연장으로서의 회식 때문에 그들은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따라서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앉자마자 잠을 청하기에 바쁘다. 지하철에서 독서를 한다는 이야기는 한량 같은 대학생이나 아직 인생을 모르는 소녀, 한가하기 짝이 없는 놈팡이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한 시간이 넘도록 나에게 자신의 과중한 업무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 사내는 문득 시계를 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다섯 시로군요.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으니 가봐야겠어요." 사내는 '바쁘다, 바뻐'라는 뒷말을 남긴 채 성급히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난 사무실로 사라져가는 그를 보며 하나의 메시지를 생각했다. 세상 일에는 해석이 가능한 사회적인 현상 이외에도 유행과 같은 몇몇 일방적인 메시지들이 있는데, 서두에 얘기했던, 그리고 지금 떠올린 메시지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한숨엔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 너무나도 바쁘다고 짐짓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일종의 과시였고 따라서 그 한숨에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렇게도 쉴새 없이 자신이 바쁘다고 말하고, 빠르게 성큼성큼 걸으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사람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끼며 또한 자신 역시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철학'이 하나의 열풍처럼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사그러든지 오래이다. 느리게 살라는 책 자체가 유행이 되어버리는, 잠깐 동안 소비되다가 놀랍도록 빠르게 사라지는 사회에 살면서,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도 꺼려지게 되었다. 느림은 게으름이고 바쁨은 뛰어난 능력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선택을 해야 된다. 업무 시간에 자판기 앞에서 몇 시간을 서성이고 계단 앞에서 어제의 스포츠 이야기를 하다가 그것 때문에 야근을 하게 되었으면서도 "당신은 제가 얼마나 지독하게 힘들고 바쁜지 모를 겁니다"라고 서두를 꺼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감탄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업무 시간에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낸 뒤 정시 퇴근하며 "그냥 놀면서 지내죠"라고 말해서 타인의 식사시간이나 회식시간의 뜨거운 안주거리가 될 것인지 말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는 듯하다. 여유있는 동작으로 행동해서 일을 할 때도 온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대강대강 한다는 의심과 호통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하는 일은 없을지라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자신의 책상을 서류 뭉치로 장식함으로써 생동감과 선명함을 얻을 것인지는 윤리적으로 반듯함을 원하는 우리들에겐 너무나도 뻔한 선택인 것처럼 말이다.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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