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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개들과 이야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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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길을 걷다 보면 개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보통 혼자였다. 목에 목걸이가 매여져 있는 개이건,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는 떠돌이 개이건. 오늘도 개 한마리를 보았다. 대충 보아도 잡종에, 주인없이 자란 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피부의 검은 털은 먼지로 뒤덮여 회색으로 번져 있었다. 그 개는 마치 이곳이 처음 와본 곳인냥, 연방 고개를 이리 저리로 조악거렸다. 그러면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슬그머니 쳐다보곤 했다.

그 개는 마침내 나를 발견하였다. 그 개는 나에게 다가와 예의바르게 인사한 뒤 물었다.

"며칠간 여행을 했더니 배도 고프고 씻지도 못했네요. 괜찮으시다면 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우선 사우나라도 가고 싶은데."

난 호주머니에서 돈을 뒤져 건내주었다. 그러자 그 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생각보단 좀 적군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 개는 그렇게 말한 뒤,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이런 스토리로 전개될 수도 있겠다. 돈을 빌려달라는 개에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흠, 넌 며칠 전에도 이 거리에서 본 개인것 같은데. 그때도 여행중이라며 돈을 빌려달라 하지 않았었나? 요즘에 상습범이 늘은 것 같아."

"오, 아닙니다." 그 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개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겼잖아요. 특히 혼자서 여행을 하는 개들은 더욱 그렇죠."

어쨌든 그 개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 개이리라. 나는 그 개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회색 건물의 풍경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걸 그저 멀리서 지켜보았다. 나 또한 수줍음을 많이 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수줍음이라는 것이 매우 모호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2005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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