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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죄악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시

by solutus 2007. 9. 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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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기를 죽였다. 아니, 어쩌면 오늘. 밤 12시가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난 두 마리의 모기를 죽였다. 한 놈은 신부 드레스처럼 새하얀 화장지로 눌러 죽였고 한 놈은 비누향이 은은하게 나는 나의 양손을 이용하여 재빠르게 압사시켰다. 죽음과 동시에 한 녀석은 빨간 피를 터트렸고 다른 한 녀석은 나를 위한 아무런 변명거리도 보여주지 않은 채 허무하게 짓이겨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 이미 수십 군데를 물린 상태였다. 팔에선 빨간 점들이 별자리를 그려 댔고 다리에선 긴 꼬리 혜성들이 붉은 빛을 그어 댔다. 그래도 나는 계속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한번은 눈앞에서 무거운 배를 움켜쥔 채 윙윙거리는 한 마리의 모기를 향해 손바닥을 날리고 말았다. 우습게도 때리는 순간 그것이 죽어버렸을까 걱정을 했다. 성급히 놈이 날아간 동선을 쫓았다. 하지만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었다.


난 그런 위협을 통해 그들에게 닥칠 죽음이 예고되길 바랐다. 하지만 놈들은 고집스럽게 나에게 달려들었다. 알고는 있었다. 그놈들은 저녁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저녁에 이 방에 남아있는 것은 나 혼자이며 그래서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나뿐이라는 것을. 물론 어느 정도의 피를 헌납할 용의는 있었다. 하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그래서 본보기로 두 마리를 죽였다. 그리곤 곧바로 피에 현혹된 군주처럼 통쾌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왜 과도한 욕심을 부렸는가! 그들을 계몽한 후 난 인자하게 웃었다.


그 다음 단계로ㅡ시체에 대한 묘한 관능을 느끼며ㅡ처참하게 압사당한 그들을 조금 들여다보았다.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인지 그들의 몸은 덜덜 떨고 있었다. 난 약간의 구토 증세를 느끼며 얼른 그들을 휴지로 감싸 세게 누른 뒤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그들은 쓰레기가 되었다. 당연하다. 누구도 그들의 죽음을 위해 못질하지 않는다. 어두운 지하 속 썩은 내 나는 바퀴벌레의 죽음처럼. 창백한 얼굴의 아름다운 소녀도 미친 듯이 도망치는 그 벌레들을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으리. 그들의 여린 가슴에 겁먹은 표정을 가득 띠운 채.


그 두 마리 이후ㅡ마치 관용이라도 베풀듯ㅡ난 더 이상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오늘도 몇 군데를 물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난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정말 우스운 일이다. 놀랍도록 변덕스럽지 않은가! 만일 모기를 죽일 수 있는 향 따위가 있었다면 난 당연히 그를 사용했을 것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들의 시체를 발로 쳐내며 지나쳤을 것이다. 때때로 발로 짓밟기도 하면서. 그래, 난 도구가 필요했다. 내 손이 아니라 다른 무엇, 타인의 칼이! 어쩌면 타인의 죄악이? 


어느 화장실, 물이 묻어 있던 좌변기. 그곳엔 상상할 수 있는 적나라함이 있다. 그 습기의 적나라함. 뚜껑을 들어 올렸을 때 잔인하게 드러나는 치사스런 오점들. 그런데 그것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곧 그를 잊어버렸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는 알리, 이 이중적 유산을. 향수에 전염되어 나오던 나의 그 까다로운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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