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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와 인간 (산지니, 2008), 김훤주 지음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1. 7. 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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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도통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책이었다. 습지에 관한 책인데 습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보다는 이름의 유래와 같은 것에 집착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실제 사료와 맞지 않게 너무 길고 불명확한데, 그 이유가 세계의 신석기 시대 구분을 따르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도 하고 있었다. 선사시대나 역사시대는 그 특성상 구분이 모호할 수 밖에 없는데 굳이 그 시기를 따져 민족주의와 연관시키는 것이 이상했고, 습지와 관련이 없는 주제를 습지에 관한 책에서 언급하는 것 또한 이상했다. 그리고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한 지역의 명칭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또한 이상했다. 어떤 지역의 명칭이 꼭 그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야할 이유는 없을 뿐더러, 이미 그 이름으로 바뀐지 오래고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으며 그 이름에 특별한 거부감도 없다면 꼭 다시 예전 명칭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예전부터 오직 그 이름으로만 불렸는지도 불명확하다). 국민의 호불호 또는 다른 여러가지 합리적인 이유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질 수 있는 이름을 단순히 그 지역의 어원적 특색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하여 잘못되었다고 수십 쪽에 걸쳐 주장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했다. 책의 중반부와 후반부는 국내의 각종 습지를 언급하며 그 습지들이 어떤 문제로 인해 (주로 개발) 사라져가고 있는데, 습지를 보존해서 환경재해를 막고 생물종 다양성을 늘려야한다는 이야기를 다소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책 중간 즈음에서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조선 시대의 행태를 꼬집는데, 이 모습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의 기준으로 수 백 년 전의 과거의 인습을 비난하는 일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할 뿐더러 그런 행동이 지금 시대의 도덕적 우위를 보여주지도 못한다.

이 책은 읽을 만한 책인가? 읽기에 쉽게 쓰여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간다는 장점은 있다. 다양한 습지 소개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 내용이 집약적이지 못하고 한쪽 의견만 제시하여 설득력이 약하며, 비슷한 주장을 예시만 바꿔 반복적으로 한다는 점 때문에 누군가에게 추천해줄 만한가에선 잠시 멈칫거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환경부가 주관하는 2008 우수환경도서에 선정되기도 했고 몇몇 사람들은 내용이 괜찮다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그걸 보자, '습지에 관해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책이 참 없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어쩌면 나 역시 책을 읽을 때 개방적인 시각으로 읽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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