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추되는 개인의 인격과 억울하게 훼손되는 명예에 대한 문제, 공권력에 침해당하는 인권에 대한 문제, 날로 걱정과 부담만 늘어가는 기초 보험에 관한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관한 문제, 환경공해에 관한 문제, 개인과 그가 속한 단체 사이의 희생에 관한 문제, 치솟는 물가와 내집 마련의 문제, 정경유착과 공권력에 유린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 각종 뉴스란을 보면 끊임없이 마주치게 되는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들 때문에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하며 말다툼을 하는 각종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감각적 문장들로 가득한 자신의 수필집을 한 커피숍에서 발표하고 있는, 도회적 차림의 한 작가가 있다. 그 옆에선 세련된 차림의 여성이 가야금을 뜯고, 청중들은 '삶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결국은 알 수 없다는, 진실은 그저 파랑새에게 있다는' 그 작가의 말을 커피를 마시며 듣고 있다. 발표회가 끝나면, 사람들은 작가와 아주 다정스럽게 사진을 찍고 자신의 예쁜 옷과 가방이 제대로 나왔는지 확인을 한다. 그리곤 몽환적으로 디자인된 그 책의 표지에 감탄을 한 뒤 자신의 가방에 그 조그마한 책을 집어 넣고는 삼삼오오 커피숍을 빠져나간다.
난 이 두 장면을 번갈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어쩌면 그곳에선 땀냄새가 나지 않아서, 아니면 외국의 오랜 건물들과 20세기의 전축·구식 카메라과 같은 기계들을 찍어놓은, 그 정형화되고 꾸며진, 무언가를 상상하도록 의도한 사진들 때문인지.... 전자보다는 후자의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혹은 실제로 볼 때마다-----다양성과 대중성, 상대성, 개개 취향의 존중이라는 대세에도 불구하고----- 난 이상하리만치 순간적인, 격한 울렁임을 느끼고 만다.
하지만 Coldplay의 음악을 종종 듣는, 비싼 등산화를 신고 있는, 비싼 전자기기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 누구는 또 그 울렁임을 느낄 것이니, 그러한 나의 감정 문제는 내 개인의 인간성 문제로 치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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